심심한 금요일을 보내고 있다. 그 ‘심심함’의 크기는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할 때, 번화가를 지나올 때 들썩대며 커진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절대적인 크기가 증가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혼자 있던 시간이 길수록 더 커진다. 공식을 만들어보자면 이렇다.
심심함 점수 = 현재 주변에 있는 사람의 수 x 혼자 있었던 시간(혹은 일 수)
집에 혼자 가만히 틀어박혀있으면 첫번째 변수는 커질 일이 없다. 나 혼자 있고, 그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정말 어쩌다 한 번, 창문 밖에서 사람들이 수다 떠는 소리가 들릴 땐 혼자 집에 있어도 저 숫자가 2 이상으로 커지기도 한다.( 내가 사는 곳 주변엔 게스트 하우스가 있어서 그런지, 한국인들보다는 외국인들의 수다 소리가 더 잘 들린다. 속닥거리다 으하하! 하고 웃는 경우도 있었다.)
만약 오늘 기준으로 한다면, 그 시간이 적절하겠다. 나는 7시부터 8시 30분까지 야근을 했다. 주변엔 아무도 나와 함께 야근하는 사람이 없었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다들 사라졌다. 나만 남아있던 시간은 약 90분, 혹은 1.5시간인데, 이걸 1 x 90= 90이라는 숫자로 만들 수 있다. Score 90의 나는 어떤 행동을 하나. 우선 그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유튜브를 켠다. 유튜브를 보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왼쪽 위 핸드폰의 로고를 확인한다. 기다리는 카톡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나를 찾는 연락이 왔을까 계속 손가락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내 린다. 심지어 보던 유튜브도 그만두고, 더 재미있어 보이는 다른 유튜브를 누른다. 스스로 ‘집중력 저하 상태’ 임을 알지만, 계속해서 스스로 그런 것들에 노출된다. 그리고 그나마 갖고 있던 집중력을 잃어버리는 행동을 반복하기도 한다. 이게 심심함 90의 신체 반응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혼자 있었던 시간’ 이 늘어나지 않는가. 그럼 점점 저 ‘심심함 점수’는 커질 수밖에 없다. 혼자가 아니라, 사람들과 같이 있어 저 부분의 숫자가 0에 가까워질 때까지 움직여야만 심심함 점수가 0에 가까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을 상상하고 나니 새로운 생각이 하나 스쳐간다. 혼자 있었던 시간이 없음에도 심심했던 어떤 때가 있지 않았던가? 그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고, 내 사람들이기에 혼자 있던 시간은 0이 된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심심함을 느꼈다. 왜였지. 나는 무슨 이유 때문에 심심했던가.
꼬리 무는 질문의 끝에서 ‘나를 향한 관심 정도’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아무리 사람들과 같이 있더라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냥 꿔다 놓은 보리자루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강의실에 앉아있더라도 심심함을 느낄 수 있는 건, 주변 사람들의 ‘수' 또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 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만약 그 강연자가 내게 관심을 준다면, 나는 그 강의를 듣는 순간을 더 이상 ‘심심하다’라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교수님이 전혀 학생들의 반응을 살피지 않고선 혼자 진도를 나간다면 어떨까. 그 내용에 제대로 집중하고 있는 학생이 아니라면 아마 (각자의 방식의) 심심함을 표현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졸기도 하고, 하품을 하거나 아예 딴짓을 하는 것들이 그렇다.
반대로 현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아주 적어서, 아주 좋은 곳에 혼자 앉아있다고 가정을 해보면 어떤 부분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극단적인 (혹은 극적인) 상황을 가정해 보자. 현재 아무도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 비교할 대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심함을 느꼈던 때가 있었나, 있었다면 어땠는가.
미국 여행을 했던 때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겨울 방학이라, 약 3주 동안 미국 남부를 돌아다닐 계획이었다. 친구들과 디즈니월드를 다녀오고 나서 헤어져, 나는 휴스턴과 오스틴을 구경하고자 했다. 휴스턴에 도착해 도시를 걸어 다니는데, 비둘기 한 마리도 없었다. 정말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미래 공상 과학 영화에나 나올만한 수준의 고층빌딩, 그리고 적막뿐이었다. 그때는 굉장히 심심했을 뿐 아니라 ‘두려움’까지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순간에 나는 ‘안전하지 않다고’까지 느끼는 것이다. 단순하게 ‘심심했다’라고 말할 순 없겠다. 결국 그 감정 안에 ‘혼자 있어도 안전한가?’라는 부분도 반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위의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심심함 함수를 다시 정의 내려본다.
심심함 점수 = (현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수 x 혼자 있었던 시간 (분) + 나를 향한 관심 정도 ) / 안정감
그리고 이 공식을 기준으로, ‘심심할 때 나는 어떤 행동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가’를 살펴보아야겠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상황과, 할 수 없는 상황을 한번 더 구분해보려고 한다. 나의 ‘심심함’ 때문에 발생하는 그 사건 사고들의 시작점에서 각 상황별 ‘크기’를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