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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an 03. 2024

다이어리, 컨택!

가짜 성장 일지 #003

[파란색 다이어리를 갖다]


유튜브를 보다가 누군가로부터 신박한 이야기를 들었다. 꿈노트를 하나 적으라고 하는데 그 꿈노트는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이 표지로 된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가만히 바라만 봐도 좋은 그런 노트를 하나 가져야 계속해서 그걸 바라보게 된다는 말이었다. 색깔이라니, 평소 색에 대해 큰 호불호가 없었던 나는 ‘어떤 색’을 골라야 할지 조금 고민되었다. 색깔보다는 가격을 우선시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혹은 때가 안 탈만한, 아니면 남들이 잘 고르지 않을 것 같은 걸로 골랐다. 이번엔 오프라인 매장에 직접 가보기로 결심했다. 가서 보이는 가장 좋은 색깔의 노트를 집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교보문고로 향했다.


교보문고 옆엔 연말과 연초 다이어리 구매자들을 위한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시간관리 전문가 A의 다이어리, 성과달성자 B의 노트, 삶에 몰입할 수 있는 C가 만든 특제 다이어리등, 정말 다양한 종류가 많았다. 그 다이어리들은 하나같이 ‘대중’을 대상으로 했다는 게 느껴지는 색깔로 구성되어 있었다. 검은색, 빨간색, 그리고 베이지색이나 옅은 분홍색의 노트였다. 편안한 느낌을 주는 갈색도 있었다. 내 마음에 닿진 않았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다니며 다이어리를 보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색이 하나 있었다. 파란색이었다. 그 색을 보자 불현듯 내가 ‘파란색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이텀에는 두 종류의 파란색 커버를 가진 다이어리가 있었다. 쨍한 파란색과 어두운 파란색이었다. 쨍한 색깔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런 ‘가이드라인’ 도 없는 다이어리였다. 그동안 수많은 ‘전문가 제작 다이어리’를 쓰면서, 다이어리가 멀어졌다-가까워졌다를 반복했던 기억이 많았다.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의 표지를 가진 다이어리는, 내가 원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기를 바랐다. 그런 점에서 로이텀의 파란(sky) 다이어리를 그 자리에서 사서 품에 안고 돌아왔다.



[아 맞아 나 파란색 좋아했지]

정말이었다. 그 유튜버 말이 맞았다. 가만히 보기만 해도 마음에 쏙 들었다. 계속 쳐다보기만 해도 뿌듯했다. 이렇게 눈에 담고 싶은 다이어리를 만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뿌듯한 마음에 손바닥으로 표지도 샥 쓸었다. 그리고 첫 페이지를 폈다. 두 번째 세 번째를 넘어가며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아주 자유로운 다이어리였다. 파란색을 보며 차분함을 한번, 그리고 그 안에 ‘채워야 할 것이 없는’ 상태에서 오는 평온함을 한번 더 느꼈다. 파란색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도 너무 좋았다. 그 끝엔 또다시, ‘내가 좋아하는 색을 오프라인으로 직접 골랐던’ 순간이 떠올라 행복했다. 1년 간 매일 볼 다이어리를 왜 매번 온라인으로 주문했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정말 쨍한 파랑을 좋아했다. 정말 예쁜 파란색의 원피스를 입은 사람이 곁을 지나가면 저절로 그 옷을 따라 시선이 움직이기도 했다. 하늘색도, 퍼런색도 아닌 파랑은 내게 뭔지 모를 고요함과 설렘을 같이 주었다. 마냥 차갑지도 않은, 그 파란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호감도가 올라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다이어리에 쓸 연필 두 자루도 같이 샀는데, 두 개 모두 파란색이었다. 연필과 함께 쓸 볼펜도 역시 파란색이었다. 파란 다이어리를 보고 고를 때의 만족감이 더 오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파랑을 골랐다.



[파란색 볼펜으로 쓴 24년의 나]

카페에 들어가 24년을 준비했다. 지난 N년동안 살면서, 내게 행복을 준 것들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참치김밥’과 ‘파란색 볼펜’을 썼다. 23년을 리뷰하고 24년에 더 해보고 싶은 것들을 쓸 때는 빨강과 파랑, 그리고 파란 껍데기를 가진 연필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썼다. 24년 준비를 위해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가치관을 재정비하고, 작년과 비교했을 때 올해 달라진 생각들을 보며 흥미로워하기도 했다. 더 강렬하게 원하는 목표도 있고, 작년보다 관심이 크게 사그라진 것들도 더러 보였다. 그 모든 이유는 23년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24년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중얼중얼, 노트에 써 내려갔다.


하루 만에 끝나지 않았다. 하루 3시간씩 3일은 족히 걸렸던 기억이 난다. 인생 키워드부터 시작해 24년의 전체 목표, 세부 계획까지 다 작성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떤 부분에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나를 막았다. 완성하고 싶은 나의 의지를 모두 좌절시키고는, SNS로 도망가도 된다고 속삭이기도 했다. 그렇게 다이어리를 중간에 덮어버려도 다시 ‘표지 색깔’을 보면 의지가 생겼다. 그 색깔을 보며 다이어리를 골랐던 마음이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 표지를 쓰다듬으며 다시 볼펜을 잡고 나의 24년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마지막 한 페이지, ‘그래서 내가 기를 습관은 무엇인지’에 대해 쓰고 나서야 끝이 났다.



시원하게 덮었다. 앞으로 자주 볼 다이어리에 채워 갈 내용이 어떤 것이 될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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