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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an 01. 2024

24년 신년계획에 대하여

가짜 성장 일지 #001

24년 신년계획을 세운다


세워도 이루지 못할 것들을 계속 만들어왔다. 돈을 벌던 순간부터 조금씩, 매년 1월 1일이 되면 부자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써대고 살을 빼겠다는 결심을 다졌다. 책 몇 권을 읽겠다는 다짐은 너무나 익숙하다. 그렇게 써댄 몇 년간의 동일한 목표를 다시 쳐다본다. 세워도 이루지 못할 것들, 이걸 내가 종이에 다시 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 12월 31일을 보다 잘 지냈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1월 1일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나만의 짧고 굵은 의식은 아니었을까. 그 이후에 되돌아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게 정말 내게 소중해서, 며칠을 두고 봐도 또 보고 싶은 것이었다면 아마 이렇게 ‘방치’ 해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년계획은 [방치] 되었다.

적어도 나의 것은 그러했다. 내버려 둔 것이다. 그게 그냥 거기에 있어도 있는 듯, 없는 듯, 관리하지 않았다. 그게 내게 이로움을 주지도 해악을 끼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문제였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반복적으로 써댔다는 게 진짜 큰 문제였다. 방치된 채로 주인을 만나지 못했던 신년계획은 그나마, 23년을 되돌아보는 주인을 한 번 만날 뿐이다. 그전까지 그 ‘문장’ 은 어떤 의미를 가졌든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그게 설령 1조 부자가 되겠다는 다짐이었든, 인스타그램 100만 팔로우를 얻고 싶다는 등의 문장이었어도 말이다. 방치된 그 글귀는 종이 위 검정 액체로 어떤 형태를 갖고 있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심지어 그것은 그림보다도 더 의미가 없다. 주인의 안일함을 쓸데없이 자극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할 수 있는 휴양지 사진이거나, 귀여운 얼굴을 가진 강아지 사진은, 적어도 그것 보단 조금 더 자주 주인을 마주쳤을 것이다. 불안감을 자극하고 모자람을 드러내게 해주는 그 글자들은 주인에 의해 의도적으로 태어났고 방치되었다.


방치된 것들을 다시 꺼내 [부활]시킬 준비를 한다.

몇 십 년간 방치된 그 계획을 그대로 다시 꺼낸다. 가만히 두기만 해도 죄책감을 유발하던, 다 죽어가던 식물의 흙을 갈아주기로 결심한 것처럼 말이다. 시들어서 죽은 것 같지만, 뿌리는 계속 흙 속에 두고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인 ‘신년 계획’의 흙을 갈아주기로 결심했다. 그 계획이 생생한 이파리를 가지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을 수행한다. 영양가 없는 흙 속에서 연명하던 그의 뿌리를 꺼내, 영양가가 높은 흙으로 옮겨주는 것이다. 그 흙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삶을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 그다음 햇빛과 물을 차례로 매일같이 쐬어주는 것이다. 그 ‘신년계획’ 녀석이 잘 성장할 수 있는 것들에 끊임없이 노출시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자라나는 이파리를 보면서 식물용 영양제도 좀 꽂아주려고 한다.


<어른이 되겠다>는 시든 꿈은 그때 뿌리내린 ‘생각’ 속에 박혀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그 크기만 유지해 왔다. 그 꿈을 꺼내 새로운 ‘생각’에 넣어주려고 한다. 가만히 그 공간에서 살아나기만 해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간 말이다. 더 많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사람들 속에 나를 던져 넣도록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요소들을 찾아 집어넣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미 어른이 된 존재들 옆에 있어보려고 하고, 더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 수단들을 찾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의 꿈이었던 ‘어른’ 이파리가 하나씩 생기를 찾길 바란다. 부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책임지고 끝까지 가본다. 이제는 내가 선택한 것이다. 내가 ‘살리기로’ 선택한 것이다. 얼마나 더 클 수 있을까? 일단, 분갈이를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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