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주 상담가의 일반론이 날 자극했다.
새해가 되면 꼭 사주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 올 한 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한 해를 어떻게 보내는 게 ‘내 삶에 이로운 지’ 스스로 잘 알지 못했다. 수많은 시간을 사람들과 부대끼며 보낼 때도, 그저 퇴근길 지하철에 끼여 정신없이 몸을 싣고 내린 사람처럼 보냈다. 내 인생이라는 지하철 속에서 말이다. 1량에 가긴커녕, 환승을 위해 허겁지겁 탄 사람처럼 말이다. 지하철 같은 내 인생은 ‘선로’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저 어디로 가야 하는데요?라는 질문에 대해 유일하게 답을 해주는 사람들은, 사주 상담가들이었다. 내 눈앞에 아무런 ‘선로’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나는 돈을 지불했다. 게임 속에서 아이템을 사듯, 계속해서 5만 원, 10만 원, 15만 원… 그렇게 내 미래를 대신 봐달라고 돈을 냈다.
어느 날 강력한 상담가를 만났다. 30분 동안 15만 원을 받는 그는 내게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너는 시골 장남 같은 사주’ 라며 나의 꼰대 기질을 찔렀다. 아니라고 말하자, 그는 ‘아닌 게 아닌데 뭘’이라고 답했다. ‘너는 정말 다양한 것으로 도전을 해야 하는데, 야채 김밥 만들다가 참치김밥을, 묵은지 김밥을 만들 뿐이야. 그게 <도전 완료>라고 위안할 뿐'이라며 나의 자의식을 깨부쉈다. 정말 내가 더 잘 살아가려면, 김밥이 아니라 쫄면과 부대찌개를, 짜장면이나 스테이크를 만들어보려고 해야한댔다.
아아 — 그 말이 꽤 인상적이었다. 정말 나는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고작 몇몇 재료만 바꿔보고선 만족해 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경제 공부를 하라’ 고 말했다. 내가 돈을 막 쓰는 걸 어떻게 알았담, 하고선 만족하고 나왔다.
그러고 나서 곰곰이 생각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 같았다. 나도 누가 내게 15만 원을 주면 30분 동안만 딱, 그런 이야기를 마구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 갇혀있는 너의 생각에서 벗어나라 (2) 메타 인지를 쌓아라 (3) 돈을 모아라 라는 말은, 정말이다. 지나가는 어른들에게 물어봐도 내게 해줄 수 있는 말 아닌가. 그 돈 15만 원이 문득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쓸 수도 있는 15만 원은 아껴도 되겠단 생각이 들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당시 만났던 대학 선배가 내게 사주 스터디를 제안했다.
2. 자기 자신의 사주는 스스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결국, 나는 나만의 김밥이 아닌 쫄면을 만들기 위해 사주 공부를 시작했다. 2주에 한 번 스터디룸에 모여,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돌아가며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내가 속한 조에서 맡았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합충형파해, 그리고 신살론이었다.
너무 낯선 것들이었다. 일단 나의 사주에 강력하게 작동하지 않는 글자들이었고, 간명하는 분들마다 중요하게 생각하여 풀이하는 방식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보통 사주 상담을 보러 들어오기에, 대운이나 세운에서 찾아오는 충을 살펴보고, 그다음 합과 형을 살펴본다는 이야기도 들은 기억이 난다. 파와 해는 그렇게 큰 작용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리뷰가 많았다.
오히려 신살이 재미있었다. 실제 해당 글자가 작용하는 힘은, 천간/지지/지장간/십성/… 보다 저 멀리 뒤쪽에 있긴 했다. 태양을 주위로 돌고 있는 지구, 금성, 목성, 토성… 같은 것들을 다 지나 저 멀리 있는 천왕성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 ‘나름 그 규칙이 있지만 태양으로부터 너무 먼’ 존재 말이다. 그러나 ‘신살'이 가지고 있는 재미가 있었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망신살’ 하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공인이나 연예인이 말실수를 하고 사죄하는 장면. 역마살은? 아마 여기저기 움직이는 모양새, 이사를 하거나 여행을 잔뜩 하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다. 원진살, 귀문관살은 어떤가? 성질이 더럽거나 예민한, 혹은 촉이 좋은 어떤 사람을 떠올리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풀이를 하진 않는다. 저 신살, 흉신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힘’ 또는 ‘특징’을 기반으로 수용하려고 하는 태도에 대해 꼭 언급하게 된다. 혹자는 ‘그렇게 걱정하지 말라’ 고 하기도 한다.
‘정작 저것들, 별로 큰 힘쓰지 못하니 문제 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한마디가 저런 ‘살’을 가진 사람에게 배움과 위로를 주기도 했다.
3. 넥스트 사주 스터디
그렇게 몇 주간 공부를 하며 책 한 권을 다 끝냈다. 넓고 얕은 지식을 알려주는 책이 끝나자, 사람들은 다음번 공부 주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 끝엔 ‘언제 결혼하고 짝을 찾을 수 있냐’는 그 물음이 있었다. 결국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줄 수 있는 ‘궁합’을 그다음으로 선정했다. 처음 공부한 책이 ‘나’와 ‘나를 둘러싼 과거와 미래’를 되짚어보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돕는 책이었다면, 두 번째 책은 나와 타인, 상대방을 바라보는 관점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과 살고 있기에, 타인과의 거리를 적절히 조절하며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나와 타인에게 모두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거리를 갖고 있어야 건강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결혼할 상대, 가정을 꾸릴 대상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평생을 같이 살아갈 사람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없고, 상대방을 모른 채 어떤 약속(또는 결혼이라는 계약)을 하는 건 너무나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런 상대방을 경험적으로 알아보는 방법도 하나 있겠지만, 모든 경험을 다 할 물리적 시간과 기회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수집해야 할 여러 정보 중 하나로 ‘궁합’ 공부를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 정말 흥미로웠다.
아쉽게도, 다음 사주 스터디에 참석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인간관계에 큰 고민을 갖고 있는 내겐 ‘궁합 독학’ 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사람 관계를 배우는 학문을 혼자 습득한다는 게 꽤나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이 또한 재미있는 부분이다. 궁합 독학,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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