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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an 07. 2024

속지 않는 법

가짜 성장 일지 #006

오전에 들린 카페 옆에 쓰인 공고에서 눈길이 가는 글귀 하나를 발견했다.


‘모월 모일 : 속지 않는 법’


속지 않는 법을 누군가가 알려준다고 했다. 화장실 가려던 걸음을 멈춰 세우고 공고 속 글자를 다시 확인했다. 속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는 클래스가 분명했다. 특이했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 까지 여러 유명한 일화들이 떠올랐다. 그 일들의 공통점은 누군가에게 ‘속아’ 신세를 망친 유명인들이라는 것이었다. 나 또한 제대로 알아보지 않아 손해를 본 경험을 포함해 보면, <속지 않는 법>이라는 이름의 교육은 누구나 꼭 한 번은 들어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교회 안에 포함된 건물이었기에,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그 방법에 대해 찾아보았다. 사탄에게 속아 선악과를 따먹은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내용이 대부분 검색 결과에 보였다. 사탄이라는 존재에게 ‘속지 않는 법’ 은 다음과 같았다.


믿음과 말씀 위에 굳건히 서있는 것. 말씀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흔들리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흔들고 속여… (중략)


종교적 색채를 제외하고 나서 봐도 꽤나 유의미한 이야기였다. 어떤 가설이 맞다고 생각하는 믿음, 그리고 그 증거 위에서 굳건히 서있는 게 속지 않는 방법이다. 그 증거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본인이 주장하는 가설에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타인의 비판 (혹은 누군가의 꾐) 이 가설의 진실과 저깃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의 머리를 흔들면, 결국 그 주장을 하던 사람은 속아 넘어갈 것이다.


가까운 사례로, 일을 하다가 보게 되는 보고서/데이터를 분석할 때 생각해 보자. 내가 만드는 데이터 요약과, 그 결과 주장하고 싶은 바가 제대로 호응하지 않으면 타인은 의심을 시작하고 그 사이를 파고든다. 정말로 ‘그게 맞는 말이냐’ 며 말하는 사람을 꽤나 난처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럴 때, 내가 타인의 말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내 주장의 맞고 틀림을 빠르게 파악한다면 어떨까. 타인이 만약 ‘너의 주장은 다 틀렸다!’라고 주장할 때,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며 그 틀렸다는 가설을 반박하고(속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나는 상대에게 끌려가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속지 않을까. 

우선 ‘나만의 믿음’ 이 벌어지는 사이가 발생할 것이라는 걸 사전에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도 어느 순간엔 ‘믿음’ 이 사라질 수 있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다시 그 사이를 좁힐 수 있을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 권유를 받은 적이 있었다. 비트코인이 오를 것이니 가상화폐에 돈을 넣고 기다리는 건 어떻냐는 말이었다. 처음 그의 말을 무시했다. 가상화폐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데다가, 그걸로 돈을 (정말) 벌 수 있다면 혼자 벌지 왜 내게 권유를 하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땐 나의 믿음, ‘가상화폐 투자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하면 돈을 잃을 것’이라는 말을 크게 믿었다.

그런 내게 계속, 그 사람은 수익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산이 많은 사람들도 소일거리 삼아 자기의 이야기를 듣고 투자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자기 역시 현재 투자를 하고 있으며 그걸로 꽤나 큰돈을 벌었다고도 말했다. 심지어 몇몇 경우 내게 캡처를 보여주며 수익 인증을 하기도 했다. 나의 (굳건했던) 믿음이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은 모르고 있었다.


 ‘믿음이 벌어진 상황’을 파악하고, 그 상황 속 패턴을 찾기 위한 관찰하는 능력이 있어야한다. 그렇게 벌어진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과거 믿음’ 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


‘수익 인증’의 이미지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은 있었을까? 아니면 내가 투자로 얻는 이익에 관심을 보일 대 마다 그가 내게 수익 인증 증거를 들이밀었다는 걸 미리 파악했다면 어땠을까? 반대로, 나는 정말 비트코인을 활용해 지금 수준의 정보로 투자를 하면 돈을 못 버는 것일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도 충분히 판단을 내려도 되지 않을까? 나의 과거 믿음이, 아니면 현재 중 어떤 것이 더 내게 이로운 선택이었을까?


그런 질문을 하다 보니 점점 나의 믿음과 어떤 ‘속삭임’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메워지는 걸 느꼈다. 어떤 부분은 나의 믿음이 맞았다. 어떤 것들은 ‘속삭임’ 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와 가까운 것들이 있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기에 거부했던 것들이 그곳에 있기도 했다. 더 나아가 나만의 콤플렉스까지 확인했다. 내가 무엇을 못하고, 그것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나만의 거리가 벌어져도, 그래서 그 사이를 의심이 비집고 들어와도 이젠, 어떻게 그 사이를 메꿔야 하는지도 알았다. 그 ‘메꾸려는’ 액션이 내게 또 다른 믿음과 근거를 준다는 것도 알았다. 거리가 벌어지는 것도, 벌어진 거리를 좁히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것의 중요성도 알았다. (나만의) 속지 않는 법이 만들어진 것처럼, 다들 자기만의 방식을 갖고 있을 거라 기대도 된다. 다음번 누군가를 만나면 이걸 물어보고 싶을 정도가 되었다.


당신이 가진, 속지 않는 법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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