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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Feb 14. 2022

매일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삶을 산다면

<인사이드 픽사 - 영감을 얻다, 스티븐 헌터 그 소년을 위하여>를 보고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스파크 쇼츠 <아웃>의 작가 스티븐 헌터다.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스파크 쇼츠 <아웃>을 쓰게 된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던 사람이었고, 스스로가 처음 자신을 인식하던 시점부터 27살이 될 때까지 그것을 숨기고 살아왔다. 80년대 당시엔 그와 비슷한 사람조차 발견하기 어려웠기에 그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기 굉장히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숨겨야 할 것’ 하나 이상을 품은 사람들은, 그 이야기뿐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들을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표현하지 않고 살기도 한다. 그 역시 자신이 ‘게이’라는 정체성을 숨기면서, 게이스러운 수많은 생각들과 행동들 느낌과 표현들을 숨겼을 것이다. 실제 그게 ‘게이스럽다’라고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사람은 없더라도 그 스스로 그런 부분을 숨겨왔을 수도 있겠다. (실제가 아니며, 단순 추측입니다)

스파크 쇼츠 <아웃> 중 에서

영상 초반에 그는 소파에 앉아 이런 이야기를 한다. 드러내고 싶은 나만의 정체성을 옆에 둔 채, 계속 앞만 바라보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옆에 둬진 정체성은 앞으로 가는 사람에게 계속 ‘나도 데려가’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그게 굉장히 거슬린다고도 표현했다.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스스로를 눌러 억제하고, 타인과 닮은 형태로만 자기 자신을 확인하던 사람이라면 정말 거슬리는 느낌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의 삶에는 계속 ‘미처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가 둥둥 풍선처럼 떠다니며 그를 따라다니지 않았을까 싶다. 때로는 풍선 같고 또 어떨 때는 무거운 돌 같기도 했겠다. 다행히 그의 가족은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었고 그 모든 사건-결과가 영화 <아웃>에도 정말 잘 표현되어있다.


성 정체성뿐 아니라,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수없이 숨기며 살아온다. 최근/MZ세대 특성/개인화/코로나 등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드러내고 있는 정체성도 자기 자신이 직접 ‘선택’ 한 것의 결과다. 그 외에 바깥으로 공개하지 못했지만 계속 자기 자신에게 거슬리는 신호를 보내는 어떤 것이 있을 것이다. 누구에겐 그게 분노로 표현되거나 충동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과도한 불안이나 걱정, 초조하거나 집착하는 방식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 결국 자기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를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답답함을 자꾸 자신의 옆에 쌓아두곤 한다. 스티븐 헌터에겐 '게이라는 성 정체성' 같은 것을 말이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그것과 비슷한 사람이 없으면 없을 수록, 그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이 잘못되었거나 건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말이다.


어느 누구도 그 감정을 옆으로 미뤄두라고 하진 않았다. 세상은 당신에게 '그렇지 않은 누군가'를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세상은 당신과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주변에 자꾸 배치했다. 마치 우주의 엔트로피처럼, 정리하지 않으면 자꾸 혼잡해지는 것 처럼 인간관계도 그렇게 흘러왔을 것이다. 주변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 사람일 수록, 그 엔트로피는 빠르게 흘러 주변을 망가뜨린다. 스스로 알아채지도 못하는 상태를 너머 완전히 기능을 하지 않는 순간에 다다르게 된 자기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이제는 그러한 애매한 상태를 벗어날 때가 되었다. 매일 자신이 누구인 지 확인하면서 말이다. 가만히 멍 때리고 그 상태에서 자신의 움직임과 행동, 태도와 감정을 그냥 구경하는 것이다. 어떻게 움직이고 반응하는지 살펴보자. 자신을 가만히 두고 보는 작업이 시작되어야 그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 방청소를 하듯 말이다. 더러워진 방 안에 도착하면, 내 방에 꼭 필요한 가구들이 어디있는지, 어떤 먼지로 뒤덮혀 있는지 확인한다. 그 다음 어디부터 치울 지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자신이 처음 선택한 그 공간부터 조금씩 치워나가는 과정까지 하게 된다면, 서서히 옆에 밀어둔 감정까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 걸릴 것이다. 여러 번 실패할 것이고, 그 실패는 지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거나 약할 수도 있다. 어느 누구도 예견할 수는 없다.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고 싶어질 때도 여러 번 발생할 것이다. 힘들 것이다. 힘든 순간이 언제 끝나는지 가늠하지도 못할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기에, 타인에게 아무리 물어봐도 나의 답이 될 수도 없다. 그냥 그렇게 나의 방을 청소하는 마음으로 계속 살펴봐야 한다. 어디를 더 치워볼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굳은살 같이 강하게 버티고 있는 무언가를 지금 당장 하나씩 걷어내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걷어내어 그 모습을 온전히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매일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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