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이야기꾼의 이야기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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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그 사람이 가진 이야기는 참 재미있다.


청중을 웃기고자하는 욕심을 가진 내겐, 그의 '에피소드 주머니'가 너무나도 부럽다. 그 중 ‘한심한 사람들’ 주머니가 제일 탐난다. 한심한 자기 자신을 욕하는 자조적인 이야기부터, 주변 사람들의 바보 같은 면모를 기가 막히게 캐치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적절하게 조합해 사람들에게 말해준다. 스스로의 멍청함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성격이라 그런지, 한심한 타인에 대한 이야기에도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듣기에 불편함이 없다. 그가 꽤나 멋진 대화 스킬을 가진 사람이란 걸 최근에 깨달았다.


그가 모임에 등장하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어서 빨리 이야기를 하라는 듯 그를 본다. 다 입을 닫고 있는 걸 확인한 그는 머릿속에서 '에피소드 주머니'를 열어 선보인다. 그의 이야기엔 몇몇 특이한 요소가 있다.


등장인물 하나하나는 임팩트가 있는 배경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 배경스토리는 곧장 '닉네임'이 된다. '임장다니는 동료' 처럼 말이다. 하나하나 그의 이야기 속 인물들은 움직이면서 사건을 만든다. 그리고 그 사건을 멀리서 지켜본 이야기꾼은 우리에게 그 내용을 전해준다. 신기한 건 누구나 그 이야기 속 닉네임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기억 속 강력하게 자리 잡은 인물들은, 몇 개월이 지나 오랜만에 만나도 잊히지 않는다. 이야기꾼을 만나는 순간, 그때의 기억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올라오기도 한다. 그의 연애사, 회사 에피소드 들은 딱 그 순간에 기억 속에 들어온다. 너무나 쉽게 그의 요즘 이야기와 이어진다. 그래서 자꾸 이야기를 듣고 싶게 한다.


그의 이야기는 지금의 내 삶과 완전 반대 상황에서 일어곤 한다. 컴퓨터 앞에 하루종일 앉아 있는 내겐, 서서 일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웃기고 흥미롭고 즐거우며 충격적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몇 년 동안이나 일할 수 있었는지 믿기지 않는다. 사람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그는 종종 중립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댔다. 사람들은 자꾸 선을 넘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매일 같이 ‘선 넘지 마세요. 당신의 안전을 위한 겁니다’라고 말을 한다. 그 말이 무색하리만큼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화를 낸댔다. ‘왜 저에게 뭘 하지 말라고 하시죠? 저는 다 허가받은 겁니다!’ 하고 말이다. 타인의 신경질에 시달린다. 그 힘듦을 견뎌내는 것을 넘어 '해탈해버린' 그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래서인가, 더 듣고 싶다.


그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적절히 편집할 줄 안다. 관찰자적 시점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가끔은 상황 속 주인공이 된다. 대기를 위해 큰 버스 안에 있던 순간을 묘사하다가도, 그 버스 속 사람들의 웃긴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준다. 감독처럼 말이다. 게다가 자기가 내뱉는 스토리에서도 쉽게 나올 줄 안다. 이야기에 취해있지 않고, 사람들의 반응에 리액션을 해준다. 그땐 댓글을 읽어주는 유튜버같기도 하다. 누군가가 그에게 조롱과 농담이 담긴 반응을 할 때, 그는 웃으며 ‘그런가? 내가 몰랐나?’ 하면서 그 리액션 조차 살려준다. 그의 빠른 상황 판단 능력과 주의력이 한편으론 너무 대단하기까지 하다.


이런 요소들이, 그와 그의 이야기를 ‘너무 듣고 싶게’ 만들어준다. 이야기의 ‘리딩과 팔로잉’을 할 줄 아는 그의 능력이 더 많이 발현되길 바랄 뿐이다. 스스로는 자기의 이야기가 얼마나 ‘말 맛이 나는지’ 알고 있을까. 그런 그의 능력이 대단하고 배울 점이 많다고 느끼는 사람이 여기 하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까. 이미 무의식 중에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설령 모른다면, 그리고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젠가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도 아마 그의 이야기를 한참 들은 다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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