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 1403
그는 어디에나 항상 부딪히며 사는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잘 모른다. 멀리서 바라보면 계속해서누군가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어 하고 그 속에서 상처를 조금씩 받아왔던 것 같다. 그 내상이 가득 담긴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짐작했을 뿐이다.
그의 표정은 링에 몇 번이고 올라갔다 내려와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복싱선수 같았다. 그가 올라가는 링 위에는 그보다 더 큰 사람들이 몇이나 있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목을 축이고 마우스 피스를 끼고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그 마우스피스는 입 밖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는 입 안에서 계속 피를 토해냈다.
정말 그게 복싱 결투가 아니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한때는 응원한 적도 있었다. 나도 그 당시 누군가에게 “너만의 링에 올라가 눈앞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라”라는 이야기를 한참 듣던 때였다. 나만의 답을 찾으려는 노력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기에 그게 맞다고 생각해서 그에게도 동일하게 이야기했다. 그게 필요해 보였으니 조금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그러고 나서 또 몇 달 정도 그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오며 가며 얼굴을 한 번씩, 대화를 몇 번씩 나누는 게 전부였다. 각자의 ‘링’ 위에서 결투를 하느라 둘 다 정신없었던 것이었다.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전략 카드를 들이밀고 있었다. 각자 자기만의 결투장에 놓인 상대의 능력치도 달랐고 강점과 약점이 달랐기에 서로 ‘연마해야 할 기술’ 도 달랐다. 포켓몬스터 결투 같았다.
내가 상대하는 존재는 바위 포켓몬이었다. 내 상대는 언제는 꼬마돌, 또 다른 날엔 데구리, 롱스톤이었다.
꽤 힘들었지만 그 상황을 버텨내는 것이 답이었다. 운이 좋게도 바위포켓몬은 (게임에서 그러하듯) 여기저기서 등장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존재. 계속 마주하다 보니 점점 익숙해져 갔다. 물포켓몬이 약점이라는 사실을 알고 ‘꼬부기 같은 존재’를 얻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꼬부기 같은 존재가 없어도 그 나름으로 잘 지내는 방법을 알았다)
그의 상대는 에스퍼 포켓몬 정도였을 것이다.
잘 알려진 것들은 캐이시, 윤겔라, 야돈, 슬리프, 아라리, 마임맨, 루주라… 그리고 영화의 제목으로도 나왔던 ‘뮤츠’까지 그것에 속한다. 참 묘하게도 그 캐릭터들은 생긴 것과는 다른 수준의 염력을 사용한다. 아기처럼 보이는 캐이시도 염력으로 사람을 조정할 줄 안다. 윤겔라나 후딘은 사람을 홀리는 도구까지 사용한다. 슬리프, 루주라도 각자의 ‘아이템’ 이 있다. 상대방을 홀려버리거나 꼼짝달싹 할 수밖에 없게 하는 그것.
그리고 이 사람은 이제 막 피카츄를 받아 태초마을을 벗어 나오던 지우였다.
염력을 쓰는 존재를 너무 초창기에 봤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기만의 피카츄가 훈련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래도 전기 포켓몬은 물 타입(야돈, 야도란) 한테는 꽤 효과적이란 말은 들었지만… 그 경기에서 야돈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의 시도 속에서 ‘피카츄 하나만 갖고 있던’ 지우는 결국 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스스로를 어딘가에 부딪히지 말라고’ 말했다. 지금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새로운 ‘포켓몬’을 잡는 것이지 스스로 자책할 때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운이 좋을 수도 있다고 했다. 조상신이 도와서 지금 이 순간을 더 지속하지 않고 끊어지게 만들어준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지금 계속 앉아있었다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계속 내상을 입히고 있었을 것이다. 훈련시켜야 할 것은 자기의 ‘전략’과 포켓몬들이다. 스스로를 부딪히지 말아야 한다. 계속 지켜내야 한다. 정신을 붙잡고, 나만의 포켓몬들을 시의적절한 순간에 내야 한다. 그래서 다음번 ‘에스퍼타입’ 들이 단체로 등장했을 때도 적절하게 잘 싸워내야 한다. 게다가 또 모른다. 바위타입들이 잔뜩 나올 수도, 비행 타입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난 안돼’ 하고 지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괜히 꼰대처럼 잔소리 같은 이야기를 계속 해댔다.
그렇게 점심시간 동안 스스로를 내던지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다. 나도 그게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