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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훈 Nov 25. 2016

시위와 폭력에 대하여

1. 우리는 지금 폭력이 필요한가.

시위와 폭력에 대하여


  아래에서는 "집회는 평화로워야 되는가?"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지금 사안에 대해 굳이 그러지 않을 필요는 무엇인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짚어 볼 것이다: 1) 한국의 자본주의, 2) 박근혜 게이트의 본질, 3) 이대, 집회, 그리고 대응방식, 4) 집회와 폭력. 물론 이러한 이슈들에 대해 논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국 내부의 사회심리학적 동향 역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반-체제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극단적인 탄압으로 인한 폭력에 대한 절대적 거부감이 대중사회의 심리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것에는 동의하는 바이다.


1. 한국의 자본주의


  막스는 자본가가 노동 착취를 통해 거대 자본을 축적할 것임을 경고했다. 하버마스는 부르주아의 이익이 공공성이란 딱지를 붙이고 의회에 반영되고 있는 현실을 문제시했다. 나아가 폴라니는 인간의 삶이 자유방임 시장경제체제라는 논리에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모든 좌파 사상가들의 이론들이 공유하는 근본적 문제의식은 경제 영역(자본)의 영향력이 정치와 사회를 압도한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재분배의 기능이 사회적 영역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해가 반영된 경제 영역에 의해 이뤄질 때 노동자들은 '착취'당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적해야 할 점은 한국의 자본주의가 서구와는 다르게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근대적 자본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본(그러니까 공장을 설립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 축척되어야 한다. 먼저, 서구에서 이러한 자본의 축적은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따라 열심히 노동하지만 금욕하는 자들에 의해 이뤄졌다(베버). 축척된 자본으로 공장을 운영할 수 있을 기계 설비를 구입할 때서야, 노동 착취에 따른 자본 축적의 논리가 확산될 수 있다(막스). 이 과정에서 축척된 자본과 함께 새롭게 출현하는 부르주아 계층은 기존의 전근대주의적인 계급, 권력과의 갈등을 빚는다(명예혁명).


  여기서 우리의 물음이 생긴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전근대적인 권력과는 상반되는 자본가들의 이익 실현에 따라 형성되었는가?" 물론 실증적이고 역사적인 검토가 필요하지만, 성급하게 나의 의견을 제시하자면 한국의 자본주의는 전근대적 권력과 함께 성장했으며, 경제영역은 결코 정치와 사회를 압도한 적이 없다.


  오늘날 재벌 기업들의 형성은 크게 두 가지 분기점을 갖는다. 이는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인데, 수출 주도를 통해 국가 경제를 부흥하고 싶은 권력의 이익과 성장하고 싶은 자본의 이익이 맞물리는 역사적 지점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재벌 기업들은 당시의 분기점에서 정권이 제공하는 기회에 입찰하고, 이를 수주함으로써 독과점적 지위를 획득한다. 정권과 자본의 이익은 경제 성장이라는 지상 명령 하에 교차한다. 정권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을 육성하고자 했고, 자본은 국내시장에서 정권의 허락 또는 묵인 하에 독과점적 시장을 형성하여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에서 반드시 지목해야 할 점은, 한국 자본의 성장은 정치 영역의 주도 아래 이뤄졌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좌파 사상가들이 지적하는 자본주의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들이 - 불평등의 심화, 비정규직, 쉬운 해고, 낮은 임금과 노동 환경 등 - 발생하는 동력이 오로지 자본가에게 있는가는 물어볼 수 있다. 하버마스는 부르주아 계급이 형성한 공론장이 의회 정치로 발전한 과정을 보여주면서. 서구의 정치 영역이 야경 국가론에 의해 제한되었음을 지적한다. 기존의 중상주의적 국가의 시장경제에 대한 개입이 부르주아 이해에 맞지 않기 때문에, 부르주아는 자신이 형성한 공론장에서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free from)을 주장하게 된다. 이러한 주장이 의회에 의해 반영될 때, 국가와 정치의 개입은 제한되며 그만큼 자본과 시장경제의 영역은 확장된다.


  하지만 한국의 자본 형성 과정에서는 국가와 자본의 이해가 충돌한 적이 없으며.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은 상호보완적으로 작동되었다. 국가는 경제 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소수 재벌의 시장 과독점을 묵인했으며, 자본은 국가에서 허락받은 노동 착취와 자본 축적을 터해 전무후무한 재벌의 지위를 형성했다. 이러한 한국 기업의 특이성은 족벌 경영에서 완전히 발현된다. 자본은 그 이윤을 최대화할 수 있는 CEO에게 맡겨지지 않는다. 승계 다툼과 경영 능력의 부족으로 기업을 완전히 말아먹을지라도, 자본은 가족에게 승계된다. 마치 전근대적 계급사회에서나 볼 수 있었던, 친족 중심의 권력 독점이 한국의 자본주의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2. 박근혜-게이트의 본질


  사실 나는 박근혜-게이트가 가시화되기 전에는, 자본이 이제 정치와 사회를 잠식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가 권력이 자본에게 넘어간 듯하다는 말씀 말이다. 당시 삼성은 선도 시장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되었고, 그만큼 성장한 자본은 드디어 한국 정치와 경제 간의 관계를 역전시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박근혜-게이트는 아직 내 생각이 순진했음을 드러낸 듯했다.


  박근혜-게이트에서 자본과 권력이 얽히는 방식은 단순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아니다. 마치 CJ가 인정한 바와 같이, 권력에게 돈을 제공한 대가로 기업 총수의 사면을 받는 거래 관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신중히 주목해야 할 점은, '거래가 어떻게 성립할 수 있었는가?'에 대함이다. 재벌과 최순실 간의 거래가 성립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재벌의 약점들을 - 불법행위 - 정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정부는 권력을 갖고 있다. 그 권력은 재벌의 총수를 감옥에 가둘 수도 있지만, 사면할 수도 있다. 나아가 정부는 재벌의 이해에 맞게 각종 규제를 철폐할 수 있는 권력마저 갖고 있는 것이다. 이 게이트에서 권력과 자본의 관계는 분명 가해-피해의 관계는 아닐지라도, 여전히 힘의 우위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태껏 지난하게 한국 자본과 권력에 관계에 대해 논했던 바는, 이 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였다: "박근혜-게이트의 본질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다시 말하자면, 자본주의 논리가 경제를 너머 정치 영역에도 잠식하고 있는 것이 현 게이트의 본질이 아닌 듯하다. 문제의 본질은 정치와 경제 영역을 가리지 않고 권력자원이 소수에게 지나치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소수들이 친족 관계와 사적 친분을 통해 얽히고설켜 일종의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인 것이다.


  이에 박근혜는 자본계급의 이익 수호자가 아니라. 전근대적인 친족 중심의 권력 독점 엘리트들의 이익 수호자의 상징으로서 이해됨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 상징체계가 근대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을 모두 마비시켰다는 것, 그렇게 공적 영역에 대한 사적 이해가 침범하여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를 자행했다는 점이 현 박근혜-게이트의 본질일 것이다.



3. 이대, 시위, 그리고 대응방식


  이화여자대학교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반대 시위(아래에서는 이대 시위)는 박근혜-게이트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데 시발점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대 시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특이점들을 주목하고 있다. 먼저, 시위의 목적이 좌파적 계급이해로부터 촉발되지 않았다는 점. 둘째, 시위의 과정에서 외부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하려고 노력했다는 점. 셋째, 시위 내부 구성원들을 연대해주었던 노래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다는 점. 이러한 특이사항들을 이해하기 위해, 기존의 시위에 대해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공권력은 폭력의 독점을 통해 성립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개인들이 가진 폭력 사용의 자연적 권리를 빼앗음으로써 태어난다.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한데, 국가 내부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함이다. 벤야민은 "폭력 비판론"을 통해, 폭력에 법을 제정하는 기능과 법을 보존하는 기능이 있음을 밝혔다. 즉 그에 따르면, 국가가 독점하지 못한 폭력은 새로운 법을 창출하고 기존의 법에 대항하는 질서를 유지할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헌법에 따라 독점적인 폭력을 포기하는 순간이 생기는 데, 이것이 바로 시위의 현장이다. 헌법에 따라 보장된 노동3권은 노동자가 자본 중심의 질서에 대항하는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존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질서가 부를 축척한 소수의 자본가들에 의해 작동되지 못하거나, 오남용 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해결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시위를 대응하는 방식은, 헌법에 명시된 권리의 적극적 실현을 보장이 아닌, 내부적 질서에 위협이 되는 폭력의 적극적 배제에 닿아 있다. (우리는 여기서 아감벤을 생각하면 좋다.)


  공권력(특히 한국)의 시위에 대응방식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1인 시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권력이 1인 시위에 대응하는 방식은 포위와 배제로 요약된다. 피켓을 들고 있는 1인을 경찰을 통해 포위하고, 그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내부로부터 배제시킨다. 즉 시위 현장에서 발현되는 폭력을 경계 짓고 포위하여, 질서 잡힌 내부로부터 무질서의 외부로 배제하는 것이다.


  다른 식으로 보자면, 이는 노조 시위에 대한 공권력의 대응방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노조 시위가 질서 속에 편입될 수 없을 때, 공권력은 다음과 같은 대응을 한다. 먼저, 전경을 줄 세워 경계를 구축한다. 둘째, 전경과 노조 사이에 고용된 정치 깡패를 배치한다. 셋째, 정치 깡패와 노조 사이에 벌어지는 폭력은 묵인한다. 이러한 대응방식은 역시 폭력의 외부화로 요약될 수 있다. 공권력은 전경을 통한 경계 설정을 통해, 헌법적으로 보장된 폭력적 시위를 외부화하며 질서 밖으로 배제시킨다. 전경의 선 바깥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이 된다. 이렇게 시위의 메세지는 들리지 않게 된다.


  하지만 공권력의 이러한 전략은 이대 시위에서 작동될 수가 없었다. 1) 폭력이 없었으며, 2) 시위의 주체는 내부자의 지위를 선점했다. 다시 말하자면, 공권력의 시위에 대한 전략은 허락된 폭력을 외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대 시위는 외부의 개입을 배제하려고 노력한 내부자들의 시위였으며, 그들은 시위의 과정에서 민중가요가 아니라 대중가요를 통해 연대했다. 연대에는 조직된 폭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4. 작금의 집회와 폭력


  내가 바라보는 집회와 폭력에 대한 관점은 앞서 논의한 문제들로부터 파생되었다. 작금의 집회는 폭력적일 필요가 없다. 이는 박근혜 퇴진 또는 탄핵을 위해, 비폭력이라는 수단이 유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적으로 시위의 구성원이 민주주의의 내부자이며,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주권자는 자신에게 주권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 폭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다만, 비상상태를 선포하면 될 뿐이다(비록 슈미트의 원의와는 상이한 바가 있더라도, 슈미트).


  논의를 전개하기에 앞서, 나는 세월호 1주기 집회를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세월호 1주기 집회는 크게 광화문과 시청으로 구분되었다. 광화문에는 세월호 천막과 함께, 1주기 추모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시청에는 1주기 관련 대규모 집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계획은 시청에서 대규모 집회가 마무리된 이후, 함께 광화문으로 행진하여 분향소에서 추모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차벽은 정확히 광화문과 시청의 가운데 설치되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는데, 이미 광화문 분향소의 줄에 선 뒤였다. 분향소의 줄은 하염없이 길게 늘어져 평화롭게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반면, 광화문이 아닌 시청에서 내린 친구들은, 내가 분향을 위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1-2여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광화문에 오겠다고 전경과 싸우고 차벽을 밀고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결국 친구들은 분향하지 못했다.


  이게 공권력이 시위를 대하는 방식이다. 질서 내부에서 수용할 수 있는 평화로운 추모 방식과, 질서에 위협이 되는 폭력을 구분하여, 그 가운데 정확히 경계를 세우는 것 말이다. 그렇게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이 공권력에 의해 재단될 때, 우리는 평화로움에 대한 강박에 권력의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차벽의 설치로 인해, 광화문의 시민들은 질서 잡힌 평화로운 추모를, 시청의 폭도들은 광적으로 선동된 폭력을 행사한 존재들로 기억될 때 말이다.


  하지만 작금의 집회는 세월호 1주기 혹은 기존의 시위에 대한 공권력의 대응방식과는 상이하다(혹은 개인적으로 그런 듯이 보인다). 역시 주목해야 될 점은, "경계가 어디에 설정이 되었는가?"이다. 민중총궐기(금속노조를 위시한 무시무시한 좌파 노조들이 참여하는) 당시 경계는 평화로운 시민들과 흥분한 폭도들 사이에 설정되지 않았다. 차벽이 막는 부분은 북쪽으로 북쪽으로 후퇴하여, 청와대로 진입하는 마지막 골목길. 다만 거기였다.


  내가 차벽의 경계를 통해 느꼈던 바는. 경계의 외부와 내부가 이제 역전되었다는 사실이다. 차벽은 더 이상 시위의 메세지를 질서 잡힌 내부로부터 배제하기 위해 형성되지 않는다. 다만, 아직까지도 형식적으로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란 직함을 가진 그 무엇을 신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해, 그것도 가장 마지노선에서 형성되고 있다. 형성된 공권력의 경계가 시위의 메세지를 격리하고 배제할 의도가 없다면, 이미 시위는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 광화문에 서울에 모인 시민들은 차벽에 의해 배제된 외부인들이 아니라, 차벽이 실질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질서의 수호자임을 천명했다. 다시 말하자면, 차벽의 후퇴가 시위의 구성원이 민주주의의 주권자임을 밝히고 있었다.



5. 하지만 결론은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었던 바는 굳이 주권자는 폭력을 자행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신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냄만으로써 세상의 질서를 다잡듯이. 민주주의의 주권자는 신화적 폭력이 아니라 신적 발현을 통해서, 경계를 반전시킬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의 시위는 폭력적일 필요가 없다. 우리는 주권자이기 때문이며, 박근혜가 민주적 질서 외부에 있는 비상사태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려는 있다. 폭력적일 필요는 없어도, 폭력에 대한 기피와 거부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에 대한 반감은 작금의 집회를 단순히 폭력과 비폭력의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소비하는 미디어에 의해 증폭되고 확산될 것이다. 때문에 이 구도 속에서 문제는 박근헤-게이트에 대한 해결이 아니라, 차후의 계급적 이해를 위한 폭력시위의 필요성을 어떻게 대중에게 또는 민주사회에 납득시키는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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