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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green Aug 26. 2022

2022년 8월

부대끼며 살고 싶다

수요일은 수업이 많은 날,

수업을 다 끝내고 고3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니

밤 12시가 다 되어 간다.


나의 아침은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수업자료를 만들고

점심은 우리 두 아이들 하교 후

간식 챙겨 먹이고 학원 보내고

이른 저녁 준비를 한다.


가끔은 아침, 점심 통틀어 말을 몇마디 하지 않는 것 같다.

혼자 심심해 티비를 켜 놓기도 하고

유투브로 목사님 영상을 하염없이 틀어 놓기도 한다.


막상 수다를 떨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려고 해도

그 사람이 바쁘면, 그 사람이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면 어쩌나 하고

전화하고픈 마음을 내려놓고

하루를 조용히 보내다



저녁 7시,

수업이 시작 된다.


페르소나, 다른 가면을 쓴다.

무지하게 단 컵 커피 한잔에 빨대를 꽂아 한모금 빨아 삼키는 순간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열정 넘치고

수능 영어에 최 강자 강사라도 된 듯이

마이크 음향을 높여가며 수업을 한다.


내가 그토록 예뻐하는 학생들도

그 2 시간 수업을 듣고 나가면

나는 또 조용하다.



우리 두 남매마저 할머니 따라 고모집에 1박 여행을 가 버린 오늘 같은 날이면

기침할 때 빼곤 소리를 내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 이 아침,

밥도 먹기 귀찮고 티비 채널만 하염없이 이리저리 넘기다

벌써 몇번은 봤을

인간극장 '흥부네 가족' 편이 방영된다.


매번 볼때마다

'아이고, 많이도 낳았다.'

나이 많은 어른들 흔히 하 소리를 해 대다


어느새 나는 티비 속 아이들의 웃음에 함께 웃고 있다.

왁자지껄, 한 순간도 오디오가 조용할 틈이 없는

그 집의 모습에

내 마음이 충만하다.


5회, 마지막 편

빠알간 스포츠 카를 타고

젊은 청년 4명이 등장한다.


인간극장에 처음 방영분을 보고 인연이 되어

수시로 찾아와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 주고

워터파크를 데리고 간다는 젊은 청년들의 얼굴이 환하다.


"제가 여기서 얻는 게 더 많아요.

제가 어디서 이렇게 화목한 가정과 부대낄 수 있겠어요.

부대끼고 산다는 게 참 좋은 거잖아요."




맞아,

부대끼고 산다는 것,

그게 참 좋은 건데.



어릴 적, 할머니 집에 살면서

주점을 운영하던 옆 할매 집에 놀러가

어른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돌아오고

누구 집 손녀가 서울서 놀러오면 그 일주일 간은 그 친구와 격없이 놀며 지냈었는데



지금은 내 삶이 너무도 바빠

누군가를 내 삶에 껴 들 틈도 없이 만들어 버려서

매일 보는 가족과

한 두명의 친한친구 외에는

나의 인생에 얽히고 섥힐 사람이 없다.



더 가만 들여다 보면

나는 사실

누군가의 단점을 찾아내고 정죄하느라 바빴고

 

나의 흠을 누군가에게 보이기도 싫어

빗장을 꽁꽁 걸어 잠근 채로 살아 왔었다.

완벽한 모습을 보이기를 소망하면서.



요즘 유독 푸근한 사람사는 내음이 그립다.

시골 할매 집 앞,

동네 할매들이 소일거리라도 하려고 창고에 모여

잘 말린 꼬추 꼬다리를 따려고 모인다.


다 아는 할매들이라

인사를 나누고 가만 앉아 대화를 듣고 있으면 참 정겹다.


"야이, 씻팔. 저 할마이는 아직도 저키 허풍이 씨여."

"아이고. 머라 캐여. 잘 들리지도 않아여."

"aa야. 너거 할마이는 아직도 저키 벌벌 떨민서 온 사방 일에 신경을 쓰고 살아여. 우얘좀 해 봐라."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89금 저격 대화를 나누지만

그래도 할머니들은 매일 만나 부대끼며 살아간다.

할아버지들은 벌써 천국에 가 계시고

그 외로움을

매일 만나서 저런 퉁을 주면서도 웃으며 함께 살아 내신다.



새벽 출근하는 남편에게 인삿말을 건네고

아직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 이 순간,

다짐해 본다.



내 삶을

나의 과거, 나의 생각, 나의 계획으로 가득 채우지 말고

다른 사람이 들어와 부대낄 공간을 조금씩 내어주며

나도 부대끼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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