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vergreen Jun 04. 2022

2022년 6월

참 다행이다

"엄마, 나는 티비에 금쪽이 보잖아? 그럼 엄마가 참 멋있는것 같애.

엄마는 나를 저렇게 안 키우고 진짜 멋있게 키웠잖아. "



다행이다.

딸아이가 기억을 못하는 것 같다.

신이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축복을 주셨다는데

나는 갖지 못했지만 나의 딸아이는 가지고 있나보다.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내겐 없는 그 엄마를 우리 아이들에게는 주고 싶었다.

엄마와 쇼핑가고, 엄마와 같이 밥 먹고,

속상한 일 엄마에게 전화해 털어버리고,

결혼식 준비하면서 엄마 없는 서러움 안 받게

든든하게 있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둘째가 갓 태어나고 두살, 다섯살 두 아이를 한꺼번에 돌보면서

이성과 다르게 내 감정은 바닥이 났다.


내가 모르던 모습이 불현듯 나왔다.

아니 어쩌면 숨기고 싶었던 감정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섯살 딸 아이가 아침밥을 먹지 않고 고집을 부리자

어르고 달래도 되었을 것을,

둘째 아기를 아기띠해 안고는 첫째 아이에게 악다구니를 썼다.


소리소리를 지르고 딸아이 등짝을 때려 버렸다.

겁에질린 아이는 식탁 의자 밑에 기어 들어가

무서워 울지도 못한채 나를 바라본다.




아, 잊은 줄 알았던 그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내가 여섯살 즈음, 어린이집에서 엄마와 함께 소풍을 갔다.

"엄마, 나 저 볼링핀 게임 안 하면 안되?" 볼멘 소리를 하자

나의 엄마는 나의 손을 잡고 화장실에 끌고 가

나의 뺨을 사정없이 갈겨 버렸다.


너무 무서워 차마 울지도 못하고

엄마를 바라보며 뺨을 맞고 있는 그때의 내가

또 생각이 났다.



남들이 하는 그냥 보통의 육아도

나는 평범하게 해 내는게 이리도 힘들까.


왜 자꾸 떠오르는 걸까.



작디 작은 딸아이가 공포에 질려 나를 바라보는데

나는 그 날 밤,

꼬박 새웠다.



오은영 박사의 온갖 육아책, 프랑스 육아법,

그 모든게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았다.


온전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에게는

보통의 육아법이 효과가 있겠지만



저어기 깊은 어둠의 심연에서 육아를 시작하는

엄마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보고 배운게 없다.

책도 효과가 없다.


나는 그저,

이것만 명심했다.



"나는 내 딸에게는 절대로 나와 같은 상처를 안겨주지 않으리라."


나는 극도로 예민하고 불안했지만

나를 닮아있는 딸 아이에게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별거 아니야. 그럴 수 있어."

"다 괜찮아, 다 지나고 나면 괜찮아."

"너는 존재자체가 너무 소중해. 네가 짜증을 내고 화를 내도 나는 너의 존재를 너무 사랑해."



어쩌면 내가 그 시절 듣고 싶었던 말들을...










이전 02화 2021년 9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