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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green Jun 17. 2022

2022년 5월

인생은 아름다워


4년 전,

중학교 3학년 두 여학생과 영어 수업을 하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줄거리를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마지막 장면,

아들을 숨기고

이 또한 게임이라며 안심시킨 뒤

빼꼼히 밖을 내다보는 아들을 위해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흉내낸 적이 있다.


팔다리를 이리저리 흔드는 모습을 흉내내다

나는 또 주책맞게 눈물이 났고,


이 영화 왜이리 슬프냐며

한창 감수성 풍부한 두 여학생도 훌쩍였다.



그 날 밤,

한 아이에게 톡이 왔다.


"선생님, 저 다음주 수업을 못 갈 것 같아요.

오늘 엄마가 갑자기 배가 아파서 응급실에 가셨는데 대장암이 의심 된다고 큰병원 가야 된대요..."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엄마가 대장암인것 같다고 큰병원에 가야할 것 같아

한동안 수업을 나오지 못할 것 같단다.

그렇게 아이는 엄마가 입원해 검사를 받는 동안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2주 정도 지나고 연락이 왔다.

"선생님, 지금 과외방 가도 돼요?"

밤늦은 시간에 과외방에 들어온 아이는

누구에게든 속마음을 터놓고 싶어

길을 걷고 걷다, 헤메고 헤메다 들어온 것 같다.

엄마가 대장암 말기란다.

본인보다 다른 가족들이 더 힘이들 것 같아서 울지도 못하겠단다.

엄마가 수술을 앞두고 있고 지금 갑자기 바뀐 모든 상황이 힘이들고 지친다고 했다.

나는 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위로가 없었다.

겪어보지 않았으니 내가 어떻게 이 아이의 마음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지금은 네 마음이 가는대로, 더 쉬다 오고 싶으면 오라 했고

여느 아이라면 토해냈을 울음도 삼킨다.

나보다 엄마가 더 힘들 거라며 울음을 삼킨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며 웃어보이며

말과는 다르게 축 쳐진 어깨를 보이며 갔다.



"선생님, 엄마가 수술이 잘됐대요! 저 이제 수업갈 수 있어요!"

연락이 왔다. 엄마의 수술이 잘 되서 너무 행복하다고 연락이 왔다.

어머니께도 전화를 드렸다.

수술한 곳이 너무 아픈데 수술이 잘됐다고 해서 기분이 좋으시단다.

에는 많이 야위셨지만 밝은 얼굴로

어머니께서 직접 운전해 오셔서

딸기 한상자를 선물로 주시며 항상 감사하다며 서로 인사와 안부를 전했다.


아이는 그 뒤로 수업을 열심히 나왔고,

어머니와는 그렇게 종종 서로 안부를 이어오다

1년 전 즈음,


"선생님, 엄마가 다시 재발했대요, 엄마가 너무 아파요..."

아이의 얼굴이 많이 어둡다.

여태 잘 버텨왔던 아이가 무너져버렸다.

뼈만 남아 있는 엄마가 자꾸만 물건을 정리하고

찌개 끓이는 법을 알려준단다.

아이는 3년간 눌러왔던 울음을 운다.

돌봐주어야 할 가족이 없는 이 곳에서,

슬퍼도 힘들어도 다 숨겨야만 했던 고작 열여덟 여자아이가

오롯이 본인의 감정에 직면한다.

더이상 버틸 힘이 없다며 운다.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사냐고 운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같이 울었다. 안고 울었다.


그렇게 몇번을 더 아이는 이곳에서

집안에 온통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같다고

두렵고 무섭다며 울음을 쏟아냈고




22년 5월,

어머니의 카톡으로 부고 카톡을 받았다.

어머니의 카톡은 아직 봄꽃이 배경이 되어

여전히 삶의 온기가 느껴지는데

어머니는 떠나셨단다.


서둘러

아이를 만나러 갔다.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아이는 담담하다.

아이에게 미안하고 사랑한다며 마지막 말을 남기시고 떠나셨단다.

아이가 얼마나 눈에 밟혔을까,

어머니께서 그토록 눈에 담고싶어 하셨을 그 딸아이를

내가 보고 있다.


차마 무어라 말을 하지 못하고 손을 잡고 어깨를 쓰다듬으니

"선생님, 아직은 괜찮아요."

저보다 다른 가족이 더 힘들테니

본인은 괜찮다며

또 다시 웃어보이는 아이를 보며 내가 안겨 울었다.



몇번이고 괜찮다며 연락을 해 오던 그 아이가,

코로나에 뒤늦게 걸려버리고

또다시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아파도 죽을 끓여줄 엄마가,

와서 건강을 걱정해주는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아이는 지금 괴로워 하고 있다.

고3이라는 사실도 이 아이에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뒤늦게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져

아무것도 하고싶어하지 않고

학교에 가서 떠드는 것 조차도 의미가 없단다.

이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


자려고 누워

아이 어머니께 읊조렸다.


우리 aa 이, 어머니 제발좀 붙잡아 달라고.

어머니 카톡 배경처럼 예쁜 해바라기 꽃밭에 계신 꿈을 이모님이 꾸셨다는데

우리 아이, 제발 어머니께서 마음 붙잡아 주셔서

부디 고등학교 생활 마무리 잘 하고,

멋진 어른으로 자라게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4년 전,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이야기를 해 주던 날

아이는 엄마의 투병소식을 들었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인생은 아이러니라는 걸

어린 네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

잔인하고 가혹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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