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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green Aug 13. 2022

2014년 어느 여름 날

새 집



결혼할 때에

남편과 나는 양쪽집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않고

우리가 가진 돈으로

작은 전셋집을 구해 살림을 시작했다.


물이 잘 빠지지도 않던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큰 아이를 키우며

힘든줄 모르고 신혼생활을 즐기다


두번째 옮긴

안방에 곰팡이가 그득한 전세집에서는

둘째 아이를 키우며

내집마련의 꿈을 키웠다.


그렇게

결혼한 지 4년차에

작은 시골에 29평 신축 아파트를

은행대출 크게 끼고 구매를 했고


큰 집으로 이사하던 날

평생 상가 2층 좁은 집에 살며

넓은 아파트를 꿈꿔왔던 남편은

이게 꿈인가 하여 하염없이 새집을 쓸고 닦았다.



주변 지인들은

젊은 나이에 집도 장만하고

딸, 아들도 다 가졌다며 축하인사를 해왔고


그 인사덕에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는사람마냥

기쁨에 취해 살고 있던 어느 날,



일하러 타지에 내려가신 시아버지께서

연락이 되지 않는다.


더운 여름 날 현장에서 일하시는 아버님이

하루 꼬박 연락이 되지 않는다.


다음날 새벽 119에 전화를 걸어

아버님계신 주소를 알려드렸고


숨막히는 적막감과 불안감 속에

이미 결말을 알것같은 느낌속에

전화한통을 받고


여름의 그 꿉꿉한 온도의 불쾌감 속

온 가족은 주저앉아 절규를 했다.


다음주에 온 가족 여름 캠핑을 갈 거라고

거실에는 에어매트리스를 사다 펼쳐놨는데

그 위에서 시어머니는 몇번이나 까무러치셨다.


아장아장 걸어나오는 둘째와

눈비비며 잠에서 깬 첫째가

내품에 안긴다.


그렇게 돌도 지나지 않은 둘째를 등에 업고

장례식장 정수기 뜨거운물로 아이 젖병을 세척해가며

시아버지 장례를 마쳤다.



상대적으로 내가 그들보다는 슬픔이 덜 할것 같아

시어머니와 남편과 시누를 위로하고


네살 난 딸아이는  이 상황을 모르길 바랬지만

따내는 그 어린 마음도 느껴지는게 있었는지

그 무거운마음을 이기지 못해

온갖 틱이 왔다.

눈을 깜빡이고 코를 킁킁댄다.


그래도 내가 슬픔이 덜 할것같아

딸아이도 내가 품어 병원을 다니고 치료를 했다.



불행은 얼마나 함께 다니길 좋아하는지

한달도 채 지나지않아

어머니께서 암 판정을 받으셨고


남들이 치켜세워주던

그 작은 동네 최신식 새 아파트

새 집에서

날마다 함께 사이좋게 무너졌다.



하지만

죽음과

죽음의 문턱으로 가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은


신기하게도

어린 생명의 몸짓하나하나가 그 모든것을 덮어버린다.


항암중 머리가 다 빠지신 어머니께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는 둘째아이의 모습이

미소를 띄게 했고


첫째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배운

작은 율동에 온 가족의 마음에 행복이 움틀거리게 한다.


아니, 삶의 의지로 붙잡을 만한게

이 아이들 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족이 두 생명을 보며

조금 밥상에서 울지 않고 밥을 먹게 되었고

두통약을 먹으면서도 일부러 야외 유원지를 나가고

큰아이 어린이집 행사에 대가족 출동하며 일부러 더 웃고

조금씩 일상을 회복해 나갔다.



남편도 어느정도 마음이 안정 되었을 때에

조용히 내게 말을 건넨다.


"여보, 이사가자.

여기있으면 매일 그 날이 생각나.

아버지 돌아가셨던 그 날이.

미안한데 여기서 좋은 기억이 없어.

이사가자, 여보."



그렇게

남향은 비싸다고

조금 저렴한 남서쪽을 바라보던

해질녘 노을이 고왔던 새집을 팔아버렸다.



고속도로를 타고가다보면

길가에 그 아파트가 보인다.



나는 그 때의 그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데

나의 사랑하는 남편도 그렇겠지,


운전하는 그의 손을 꼭 붙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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