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evergreen
Sep 08. 2022
친구,
나와 나이가 같은 친구를 만나면
항상 주변인처럼 겉도는 느낌이 강했다.
그들이 그 나이대에 맞는
그 순간에 적절한 가벼운 일상의 대화들조차도
나는 항상 저 먼 발치서 듣고만 있었다.
학생들 곁에서 위로와 조언과 충고는 잘 하지만
또래친구와의 일에서도
항상 퍼주는 역할을 스스로 자처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려 했지
편하게 있는 걸 하지 못하고 항상 불편해 했다.
그래서 몇 안되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스스로 담을 쌓고 있었는데
4년전, 이 동네 이사오고 나서
우연히 만난 한 친구는
이런 내 속을 빤히 다 보고 있는 듯이 다가온다.
무얼 먹고 싶냐며 나의 의중을 묻는다.
내가 무얼 먹고 싶지, 이런 것도 한참을 고민하다
감자탕을 이야기 한다.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친구를 보자
밤 늦게 수업하고 나온 피로가 사라진다.
뼈를 바르고
안 매운 오이고추를 쌈장에 찍어 먹으며 할 이야기가 아닌,
지난 날 내가 병원을 다녔던 이야기를 하며
"야, 나 또 눈물 나잖아." 하며 친구가 먼저 눈물이 고인다.
이 나이에
나를 위해 울어주는 친구라니,
그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항상 먼저 계산해야 편한 나인데
친구가 미리 먼저 밥값을 다 계산해 두었다.
골목 하나를 두고 카페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웅웅대는 말소리에 마음이 불편하다.
"aa야, 여기 소리에 마음이 좀 답답하다. 다른데 갈까?"
"잘했어. 그렇게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 좋아 좋아!"
듬직한 언니처럼 나를 끌고
넓직한 카페로 데려 간다.
커피도 본인이 사 준다며 그저 가만 있으라는 이 친구,
기분 좋게 커피를 마시며
저 먼 옛날 10년 전 이야기도 꺼낸다.
마음속 깊은 곳
빗장이 열리고 미주알 고주알 떠들어 댄다.
학생들이 내게 마음을 열고 터놓듯이
나도 오랫만에,
믿을만한 사람에게 속을 내비춘다.
친구가 사뭇 진지한 톤으로 말을 한다.
"사실, 나 너한테 고마운거 있데이."
"뭐야? 내가 뭐 한게 있어?"
"나 자존감 디게 낮았을때 있지. 그때 니가 글 한번 써 보라고 했었잖아?
나 니 말 듣고 용기내서 글 썼는데 출판사에 등단했데이."
친구의 손을 잡고 축하를 해 주다
눈물이 아주 그냥 제대로 터져 버렸다.
축하해, 축하해.
정말 축하해.
냅킨으로 눈물 닦고 있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친구는 말을 이어간다.
"니, 진짜 멋있는 사람이데이. 알지?
니가 나를 이렇게 용기나게 만들었데이.
그러니까 니 자꾸 니 갉아 먹지 말고, 괴롭히지 말고.
니가 좋아하는 것 하면서 니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조금 편하게 살아래이. 응?"
사람들의 말소리,
주변 풍경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그 친구의 저 한글자 한글자가
내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 또렷히 박힌다.
모든것 다 혼자 이고지고 걸어왔는데
친구는 다시한번더 당부를 한다.
"내 이런거 좋아한데이. 이야기들어주는거.
그러니까 언제든 마음 답답할 때 전화해래이."
세상 든든하다.
이젠 사람들과
부대끼고 살고 싶다했더니
곁에 있던 좋은 친구가 먼저 손을 내밀어준다.
친구가 곧 책이 발간된다고 한다.
세상 행복하다.
이제 좋은 일, 속상한 일,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같이 이고지고 살아도 될것같다.
오늘은 마음이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