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둥이로 태어난 아기는 대학병원 인큐베이터로 갔다. 그리고 간호사님은 이제 막 아빠가 된 나에게 요청사항을 안내한다. 0단계 또는 1단계 기저귀, 각종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약, 유축모유 등 요청을 받았다. 물론 유축모유는 선택사항이며, 모유가 부족하거나 없을 시 분유를 먹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모유 특히, 초유는 이른둥이 발달에 매우 좋다. 선택이 아닌 필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같이 입원했을 때는 유축 후 바로 가져다줬다. 그러나 문제는 아내와 내가 퇴원한 후였다. 퇴원전날 아내는 최대한 모유를 유축했다. 아기가 먹을 수 있는 유축모유는 하루치가 남았다.
모유배달, 귀찮음은 없다
퇴원 후 그다음 날부터 우리는 모유를 배달하기로 했다. 나는 병원까지 직접 배달 역할을 했다. 매일 아내는 열심히 유축해 놓고, 나는 아내로부터 유축모유를 받아 매일 아기가 있는 병원에 전달했다. 차로 왕복 40분, 수많은 아파트 단지를 헤치며 도로를 달렸다. 차로 다니는 주변에는 수많은 배달 오토바이들이 지나갔다. 나도 그들처럼 배달하는 라이더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느낌이 절대 싫지 않았고, 귀찮다고 느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외출을 잘 안 하는 내 성격과는 의외였다. 아마도 귀찮음보다 아기를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오히려 매일 병원에서 공유해 주는 아기의 성장소식에 기뻤고, 희망찼다. 일하는 피곤함까지도 미루어두는 모습에 새삼 다시 한번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이 들었다.
야근과 회식은 어렵습니다, 모유 배달해야합니다
회사에는 미리 양해를 구했다. 직무순환으로 업무를 맡은 지 7개월 밖에 안되었다. 더구나 회사에서 중책인 기획 직무였다. 그럼에도 나는 팀장과 부장에게 야근과 회식은 당분간 어렵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정을 말하며 며칠간은 모유배달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스럽게 회사에서는 흔쾌히 이해해 줬다. 회사와 주변 동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었다. 물론, 업무에 문제가 발생 안 하도록 점심시간에도 일할 정도로 나도 꽉 차게 일했다.
약 2주 동안 본업과 배달 모두 어찌어찌해냈다.퇴근 후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집에 도착하여 차를 끌고, 아내가 있는 산후조리원으로 간다. 아내가 하루동안 유축한 모유를 받아 병원에 전달하면 8시다. 퇴근 후 고된 스케줄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이것도 의연하게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어려움은 진정한 어려움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자리는 일과 가정 모두 놓칠 수 없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듯, 아플 시간도 아깝고 아플 겨를이 없다.
아내와 라디오를 통해 받는 위로
매일 다니는 모습에 아내는 내게 고마움과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내색하지 않았지만 아내는 알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간식을 싸서 나에게 줬다. 아내는 내가 저녁도 미루고, 모유를 배달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내는산후조리원에서 주는 저녁 간식을 먹지 않고 줬다. 고구마와 요구르트, 에너지바 등을 챙겨 유축한 모유팩들과 함께 줬다. 나는 간식을 차에서 먹으며 졸음운전을 쫓고, 허기를 달랬다. 아내의 마음이 느껴져 감사했고,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힘이 됐다.
도로 위 운전 중에는 라디오를 들었다. 밤에 차 안에서 듣는 라디오에 재미를 붙였다. 배철수, 이금희, 헤이즈 등 저녁시간 DJ의 라디오를 자주 듣게 되었다. 즐겁게 노래와 사연을 틀고 도로 위를 누볐다. 노래와 사연을 듣다 보면 잠도 깨고, 기분상으로 금방 병원과 집에 도달했다. 그리고 바쁘고 빡빡한 하루에 비어버린 감성과 낭만을 채워주는 마음의 오아시스 역할을 해줬다.
아내와 아기의 산후조리원 퇴소로 보상받다
병원에서 집에 도착하면 밤 8시 반, 저녁을 먹고 설거지까지 하면 10시가 된다. 지인들이 선물로 보낸 택배를 뜯고, 집을 정리하다 보면 자정이 훌쩍 넘어간다. 아내가 급하게 입원했고, 아기가 예정보다 빠르게 와서 정리해야 할 것이 몰려 있었다. 매일 아기옷, 이불, 손수건 등을 빨래를 돌리고, 건조기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분유포트, 수유소파 등을 설치하고 소독하고 닦았다. 그렇게 매일 잠에 들었고, 일어나면 출근, 퇴근, 모유배달, 집정리를 반복했다.
이렇게 약 2주가 흘렀다. 아내와 아기가 집으로 오는 날이 밝았다. 바쁜 하루가 마무리가 다시 바뀌는 날이었다. 모유 배달을 통해 첫 아버지 역할을 잘 해냈다는 뿌듯함도 들었다. 손발이 고생하고, 체력적으로 지치기도 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행복했다. 함께할 수 있다는 희망이 실현되었기에 아기의 퇴원 자체가 보상받았다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