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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Jul 11. 2022

22년 7월 10일 최대한 볕을 피하는 일정으로 살기

22개월 3일

16일간의 친정 생활을 떠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떠나기 전에 살았던 일상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몸에 익었던 패턴도 다 지워졌다. 1년을 살다 온 것도 아닌데. 16일이면 매일 했던 일도 금방 잊을 수 있구나. 대전 일정이 끝나갈 무렵 내 머릿속은 일상의 기억을 더듬느라 바빴다. 기억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서는 그럼 어떻게 다시 꾸려갈까 고민했다. 돌아오자마자 지난번에 싸웠던 사촌도 만나고 친한 언니네 식구들을 맞이하느라 주말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렇게 월요일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난밤의 새벽 수다로 피곤했던 몸은 초저녁이 되자 졸음을 이길 수 없었다. 다행히 우주가 낮잠을 짧게 자서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우리 모두 다 같이 10시가 되기도 전에 기절했고 우주의 소리에 잠에서 깨보니 새벽 3시 20분이었다. 주말 간에 정리하지 못한 생각들을 꺼내보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묵상하고, 일기 쓰고, 오늘의 식단을 정리하고, 요가하고 아주 잠깐 다시 눈을 붙여야지. 


지난주에 하지 못한 묵상을 가장 먼저 했다. 오늘이 월요일이니 새로운 묵상을 또 해야 하니까, 오늘을 넘기면 안 된다. 그저 얼른 해서 얼른 다른 것들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장 먼저 말씀을 읽었는데, 내가 그간 보지 못한 두려움의 실체를 발견했다.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를 피부로 느끼며 우주가 나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항상 있었다. 그래서 1년 넘게 출애굽기를 묵상하는 동안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출애굽기의 기본 메시지를 볼 때마다 앞으로 겪어야만 할 것 같은 재난과 재앙을 향한 두려움을 내려놓자는 결론으로 마무리하곤 했다. 


그럼에도 자꾸 두려운 이유는 계속 뜨거워지는 날씨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주 다시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본문을 읽으면 '살 길은 하나님이 주시겠지, 두려워하지 말자.' 하는 깨달음을, 돌이켜보니 1년 넘게 반복했다. 또 같은 말씀, 같은 결론이 나려나 하는 생각으로 오늘 본문을 읽었다. 갈라진 홍해가 다시 덮이고 무사히 길을 건넌 후에 모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었는데, 읽자마자 수치심이 밀려왔다. 그리고 여러 번 읽고 나서는 내가 실제로 품은 두려움이 드러났다. 나는 내 일상을 살아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우주를 돌봄과 동시에 쫓기는 기분으로 집안일을 하고, 능력이 부족해서 완벽하지 못한 요리와 집의 상태, 그리고 육아 패턴을 나 스스로 다시 봐야만 하는 매일이 두려웠다. 그걸 두렵다고 인정하지 못해서 자꾸 지구가 멸망할까 봐 두렵다는 생각을 실제인 것처럼 모든 고민 위에 덮어두었다.


홍해가 갈라지고 다시 덮어지는 사건을 목격한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일상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마 적어도 나처럼 일상이 '어떤 상태'가 되지 않는다고 두려워하지는 않았겠지. 그들은 엄청난 사건을 경험하고 목격했다. 그러니 살아남았다는 사실만 그들에게 감사할 제목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모세의 노래를 읽자 애쓰지 않아도 내 두려움이 드러나고 잠재워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만든 두려움을 보았다. '제대로'는 실체도 없는데 말이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완벽한 계획을 세워서 그걸 지키며 보람을 느껴보자는 생각도, 어디론가 떠남으로 일상에서 멀어져 보려는 노력도 갑자기 연기처럼 허공에서 흩어졌다. 


우주가 빠르게 크고 있다. 아침에는 찬찬히 문장을 만들어냈다. "우주가, 시리얼을, 먹어요." 하고. 성공의 기쁨이 컸는지 종일 문장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목적어를 배치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는 듯했다. 이케아에서 졸음이 쏟아지니 집에 가고 싶다고 표현했을 때는 정말 많이 컸구나 생각했다. 본인이 아기가 아니라고 한다. 어릴 때 사진을 보여주고 누구냐고 물으니 '우주 아기 때'라고 말했다며 서방구는 기적을 본 사람처럼 증언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주입하듯 가르치지 않았다. 설계된 뇌의 성장 프로그램에 따라 자라 가는 기적을 목격할 뿐이다. 


우주의 놀라운 성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쁨을 누리고 기억하는 데 써야 할 에너지를 앞서 말한 두려움에 너무 많이 내어주고 있었다. 우주를 보며 '우와!' 하다가도 곧 해치워야 할 다른 일을 언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각을 재느라 금방 잊어버리곤 했다. 가볍게 갈 수 있을까? 모세의 노래를 크게 적어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다시 뒤덮인 홍해를 바라보는 그 자리에 선 것처럼 살아가 보아야지. 우주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일에 더 많이 집중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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