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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Aug 09. 2022

22년 8월 8일 폭우

23개월 1일

수족구가 끝나고 콧물이 왔다. 연신 재채기를 해대며 콧물을 흘리는 우주를 지켜보며 내가 또 뭘 놓친 건가 고민하다가 일단 에어컨을 끄고 7부 내복으로 갈아입혔다. 면역도 떨어지고 체력도 아직 다 돌아오지 않았을 텐데 너무 원래 지내던 대로 시원하게 지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나고도 한참 울면서 힘들어하기에 폭우를 뚫고 버스로 소아과에 다녀왔다. 신도시의 단점은 택시가 잘 안 잡힌다. 차가 없으니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네.


잠들 때만 잠시 에어컨을 켰다가 다시 끄고 잠이 들었다. 새벽 세 시쯤 일어나 두유를 달라고 울며 다시 잠들지 못하는 우주를 달래주다가 이런저런 추측을 했다. 병원에서 받아온 콧물약을 일단 내일로 미루기로 했는데 그걸 안 먹여서 더 안 좋아진 걸까? 아니면 배가 아픈 건가. 다른 통증이 생긴 걸까. 그러다 아무래도 더워서 그러는 것 같아서 거실 에어컨을 다시 켰다. 직접 바람을 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었다. 시원한 공기가 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니 우주가 깊은 잠에 빠졌다. 우주를 재워놓고 먹으려 했던 간장게장과 따뜻한 흰쌀밥을 서재로 가져왔다. 


간장게장은 한 입에 나를 행복으로 데려갔다. 게 두 개를 게딱지까지 긁어먹고 홈런볼에 우유까지 때린 지금 나는 아무 원이 없다. 먹기 직전에 우주를 재울 때만 해도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다. 지난밤에 이 때다 싶어 친구를 만나러 나간 서방구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싶은 생각도 들고, 이번 주가 지나면 나는 어떻게 그와 같은 자유를 얻어낼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서방구는 진정으로 나를 위하고 사랑하는가 하는 질문까지 도달했었다. 그러나 나를 단숨에 행복으로 옮겨준 간장게장은 대전으로 떠나기 직전 서방구가 나에게 선물한 반찬이었다. 허허. 민망하다.


내일은 우주랑 있는 동안 핸드폰을 만지지 않기로 결심했다. 지치기 시작하면 나에게 나타나는 가장 분명한 변화가 핸드폰을 쥐고 있는 시간이다. 게장으로 충전했으니 내일은 힘을 내보자. 그나저나 장 보러 한 번은 가야 하는데 비가 많이 와서 큰일이다. 내일은 좀 그치려나. 서울에서 일하는 사촌동생이 퇴근 버스에 갇혀 11시가 넘도록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잘 돌아갔는지 궁금하다. 아침에 연락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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