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개월 30일
서방구가 목금 1박 2일 일정으로 출장 간다고 해서 엄마를 하루 더 붙잡아 두었다. 덕분에 어제는 깜짝 서울여행도 했다. 지난주에 방문했던 식당에 친구 청첩장을 두고 왔다는 걸 알게 됐다. 식당에 전화해보니 청첩장을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이라 가기는 좀 그렇고 택배로 받을 방법이 있는지 찾고 있는데 엄마가 다 같이 서울 나들이나 가자고 했다. 새 차 굴려보러 가고 싶다고. 나는 엄마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정확히 안다. 나는 엄마를 닮았다. 어딘가로 떠나는 데 효율과 계산은 필요 없다. 떠날 마음과 시간만 있다면 어디든 간다.
용산역 가는 길에 양재에서 빠져나와 거기 사는 친척언니를 픽업했다. 언니지만 우리 엄마랑 5-6살 밖에 차이가 안나는, 큰 이모의 큰 딸이다. 갑자기 나오라고 전화해도 바로 응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언니는 장성한 두 딸이 있다. 막내가 올해 고 3이라고 했다. 아이를 그 나이까지 키워본다는 건 또 어떤 경험일까. 대화에 틈틈이 내 궁금증을 풀어놓았다. 언니는 어린이집 보내기 싫으면 안 보내도 된다고 했다. 굳이 보낼 필요도 없다고. 언니는 두 아이 모두 7세에 1년만 유치원에 보낸 게 전부라고 했다. 둘째도 첫째가 동생 낳아달라고 해서 6살 터울로 낳았다고. 조급하게 둘째 시기를 결정하려 했던 지난 며칠이 갑자기 우스워졌다.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청첩장도 무사히 찾았다. 우주가 피곤한 듯 보였는데 그래도 잘 있어주었다. 우유 한 잔 배불리 먹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깊이 잠들었다. 아주 간당간당하게 퇴근시간을 피해 집에 돌아왔다. 닭백숙 해준다고 닭을 사 온 건 난데 결국 엄마가 요리했다. 정말 맛있었다. 우주는 오랜만에 아기 때 쓰던 욕조에 들어가서 즐거운 목욕시간을 보냈다. 그때 보니 피부에 빨간 두드러기가 몇 개 있었는데 오늘은 더 많이 생겼다. 뭐가 문제지. 내일 아침엔 병원에 가봐야겠다.
마음이 분주하다. 그래도 언니 만나고 나서는 둘째 고민이 많이 가벼워졌다. 이제는 정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지. 책장 두 개와 책상 두 개를 당근에 올려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그 위를 차지하고 있는 책을 모두 내리고, 묶고, 쌓아두어야 한다. 버릴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 옷을 그대로 새집의 옷장에 걸기만 하면 될 정도로 분류해야 한다. 그래야 이사 후에 할 일이 줄어든다. 이사 후에는 경제활동을 해도 되니까, 돈이 될만한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머릿속에 부유하던 아이디어를 하나씩 꺼내서 구체적으로 정리해야겠다. 조금의 자유가 있으면 좋겠다.
벌써 두 신데. 피곤하지만 그냥 눕기는 너무 아쉬운 밤이다. 그래도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