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담백한 빵, 담백한 일상

동생의 빵이 나에게 준 것.

by 마이문

동생의 빵이야기를 내 목소리로 전달하겠다고 큰 소리 쳐놓고 몇개월이 또 흘러버렸다. 동생은 '언제 다시 연재되죠?'라고 질문을 던지다가 포기했는지 최근엔 그렇게 자주하던 질문도 멈추어버렸다. 일단은 여름 내내 길고 긴 휴무를 가지게 되어 동생이 빵만드는 모습을 관찰할 그리고 그의 빵을 먹어볼 기회가 없었고, 휴무를 끝내고 재오픈 할 때쯤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다시 오픈하면서 대단한 각오로 돌아왔지만 초짜 청년창업가들에게 시련은 멈추지 않고 찾아왔다. 사업에서 찾아오는 시련이란 그냥 견디기만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 계속 고민하고 대안을 찾고 개선하는 행동을 반복했다. 어쨋든 이건 다 글을 쓰지 못한데 대한 변명이다.





나는 입맛이 짜다. 짠 것을 좋아한다. 내가 맛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짜다고 한다. 그만큼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고 그 맛에 길들여져 있어서 싱거우면 대번에 맛이 없다고 느끼는 입맛이다. 동생은 그와 반대의 입맛을 가지고 있다. 싱거울 수록 맛있다고 하고, 조미료가 최대한 가미되지 않은 음식을 맛있다고 느낀다.

나는 저지르고 보는 타입이다. 당장에 끌리는 것은 무엇이든 내 눈 앞에 가져다놓고 봐야하는 성격이다. 갖고 싶은 물건을 가지지 못하면 실연 당한 사람처럼 그 물건을 가질 때까지 우울의 심연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수업을 제끼고라도 훌쩍 떠나버리곤 했다. 보고 싶으면 당장 봐야하고, 지금의 욕구나 감정이 불러오는 끌림을 충족해야만 했다. 다행히 그것의 정도가 범죄의 가능성이 있는 만큼은 아니어서 주변인들로 부터 '너는 참 자유롭구나'라는 평가에서 그친 점은 참 다행이다.


동생은 달랐다. 당장 해결해야하는 욕구가 없는 사람같았다. 미래의 일을 늘 염두해두었고 하루하루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다. 욕구가 없는 게 아니라 과정 속에 있는 사람으로서 당장의 소원은 잠시 뒤로 미루어졌을 뿐이었다. 스물 한 살이라는 이른 나이부터 늦잠 쿨쿨 자며 지각을 일삼는 언니 옆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매일의 완성을 이뤄냈다. 새벽 6시건, 5시건 허둥지둥 하는 법이 없는 사람. 그런 생활 패턴으로 지금까지 일해온 사람. 한 마디로 '진득한 사람'이 내 동생이다.




입맛과 성격이 관련이 있을까? 적어도 우리 자매에게는 딱 맞는 명제같다. 이제와서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가게 오픈을 준비하고, 문을 열기 시작할 때 즈음까지는 동생의 빵에서 맛을 느낄 때까지 다섯 입 정도 먹어야만 했다. 그제서야 맛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짠 맛에 길들여진 입맛에게 동생의 빵에서 이렇다 할 '맛'을 느끼기란 쉽지가 않았다. 매일매일 빵맛을 보고 피드백 해주어야하는 유일한 사람이 나인데...?


신기하게 빵에서 맛이 나는 타이밍이 점점 짧아졌다. 동생은 종종, 아니 자주 '재료 본연의 맛'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빵맛을 느끼는 타이밍이 줄어들었다고 느낀 건 내가 바로 그 재료 본연의 맛을 깨달았던 시점이었다. 씹을 수록 입안에 감도는 치아바타의 고소함, 짜고 달고 자극적인 조미료의 맛이 아니라 마늘이 내는 특유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갈릭바게트, 버터와 반죽이 어우러지며 그 자체로 매력있는 오리지널 크루아상의 맛, 계란이 이미 충분히 스스로 가진 맛을 방해하지 않는 에그마요. 이렇게 나열하지 못한 다른 빵들이 너무 많다.


바질치아바타와 오리엔탈드레싱



처음에는 손님들 중에도 싱겁다는 평이 있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했던 사람들이 두 번 오고 세 번 오면서 했던 말은 담백해서 좋다는 말. 그리고 많다고 생각했던 빵을 어느 새 혼자 다 먹어버렸더라는 말. 두 번째 말에는 나도 너무 공감되서 속으로 고개를 무한번 끄덕였는데, 어느 날 서울가던 기차 안에서 갈릭바게트를 손에 들고 지금 먹을까, 분명히 먹다 남길 것 같은데 이따 친구들과 같이 먹을까 고민하다 남더라도 지금 먹고 싶으니 먹어야지 하다가 정신차려보니 바게트 한줄을 다 먹어버렸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입맛과 성격의 관계로 돌아와보면, 나는 점점 동생과 닮아가는 일상을 만들고 있다. 매일매일 동생의 담백한 빵을 재료가 내는 맛에 심취해 먹다보니 그런가보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도착해 매장 불을 켜고 구워진 빵을 진열하고 쇼케이스를 채우고 문을 여는 반복이 동생의 빵을 먹는 행위와 닮아간다. 당장 원하는 곳으로 달려나가지 않아도, 갖고 싶은 물건을 손에 넣지 않아도, 일상의 이벤트를 만들지 않아도, 매일이 똑같다 하더라도 맛있는 일상. 24시간에 넣은 재료들의 맛을 충분히 보는 것. 그것이 동생의 빵이 내게 가르쳐 준 담백한 일상의 맛, 담백한 빵의 맛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