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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Jun 03. 2016

맥날리 로빈슨 McNally Robinson

위니펙의 independent book seller.

맥날리 로빈슨은 캐나다의 위니펙에 있는 서점이다. 다시 한국에 온지 한 달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나고 있는 지금도 맥날리 로빈슨의 초록 간판만 떠올리면 마음이 설렌다. 살 책이 있어 들렀을 때도 지나가는 길에 잠시 머물렀을 때도 언제나 맥날리는 내 마음에 안정을 주었다. 그래서 꼭 글로 남기고 싶었다. 서점 안에서 받은 인상, 배우고 싶었던 것들, 그리고 돌아와서 남은 여운까지도 잘 정리해서 남겨두고 싶었다.



서점 양쪽으로 나있는 큰 창문이 매력적인 공간이다. 창밖에는 여전히 찬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잠시 잊게 해주는 그런 곳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곤 했다. 물론 그 순간이 끝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영어로 된 책을 읽기가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서점 곳곳에는 그렇게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소파가 마련되어 있다. 처음 서점에 갔을 때 너무 뜬금없는 자리에 소파들이 놓여있어서 마음대로 앉아도 되나,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서점을 천천히 둘러보니 소파만 자유롭게 놓여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서점의 모습과는 책장 배치가 달랐다. 독특했다. 책장들은 열을 맞추어 쭉 늘어져 있지 않고 자유롭게, 그러나 서로 조화를 이루며 마치 나뭇가지같은 형상으로 놓여져 있었다. 책장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이 들를 때마다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던 것이 아닐까. 맥날리와 친해지고 싶어 그 뒤로 몇 번을 더 찾아가며 그 장소가 주는 매력에 대해 생각했다.

공책을 사고 싶어서 서점이나 문구센터같은 곳을 찾고 있었을 때, 위니펙에서 머무르고 있었던 목사님 댁의 사모님께서 추천해주셨던 곳이 맥날리였다. 처음 서점에 다녀온 날, 맥날리에서 일기장을 묶어 책으로 만들어 준다는 얘길 나에게 해주셨다. 그래서 두 번째 방문하는 날 맥날리 내부를 열심히 돌아다니며 책을 만들어줄 법한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 때 눈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SELF PUBLISH'가 적혀있는 판넬이었다. 셀프 퍼블리쉬라니. 그 단어에 심장이 쿵쿵 뛰었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대학을 다니던 내내 독립출판에 관심이 많았다. 경영학과에 다니면서 거대한 힘이 작은 가능성을 짓누르는 이 사회의 구조를 알아차렸을 때의 허무함이 나를 더 '독립'이라는 단어에 감동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가졌던 관심은 학사논문의 주제로 독립출판을 선택하면서 더욱 깊어졌다. 오래 보고 많이 보고 힘든 일을 함께 겪은 친구와 훨씬 친해지듯, 나도 독립출판과 그랬다.


그런데 'SELF PUBLISH'라니. 이렇게 큰 서점에서 누군가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니. 꼭 한 번 책을 만들어보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그 순간 다짐했다. 기본 40장을 제작해야한다는 말에 결국 만들어보지는 못하고 돌아오긴 했지만. 그렇게 셀프로 제작한 책은 맥날리에서 판매도 가능했다.

맥날리가 independent book seller라는 사실은 돌아와서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셀프 퍼블리쉬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동은 덜해지는 듯 했지만 오히려 그렇게 큰 독립서점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또 다른 벅찬 감정이 밀려왔다. 독립출판물을 접하고 독립출판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앞으로도 이런 문화들이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나도 독립출판물들을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게 되기를 바랐다.


그런 내 꿈들에 맥날리는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물론 국가적 환경이 다름으로 인해 오는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 지구상에 커다란 독립서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기뻤다는 말이 간단하지만 가장 적절한 것 같다.

한국에 돌아온 나와 맥날리의 연결고리는 올리버 제퍼스의 책들이다. 맥날리의 2층은 Kids section이다. 어린이는 아니지만 팝업북들이 신선하고 독특해서 구경하러 자주 올라갔었다. 최근 한국에서 유행하는 그림체들도 다 거기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누군가의 독특한 그림은 아니었구나 깨달으며,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포스트모던 이전의 시대처럼 비슷한 양식은 유행하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예쁜 그림책들 중에 유독 눈에 들어오던 빨간 책이 있었는데 올리버 제퍼스의 'Once upon an Alphabet'이었다. 그림도 독특한 매력이 있었고 상식을 깨는 상상력이 너무 재밌었다. 검색해보니 재미있는 영상작업도 많이 하고 있는 작가였다. 한국에도 여러 권의 번역본이 출간되어 있었다. 그의 책을 보고 참 엉뚱한 사람이구나 느끼다가 문득 그 사람의 생각을 꼭 마음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가 가져간 책들을 가끔씩 들춰보고 그의 엉뚱함에 흠뻑 빠지고 싶었다. 이건 꼭 사야해!를 마음으로 외치며 있는 돈 없는 돈 털어 구매했던 그날을 시작으로 4권의 책을 한국까지 실어왔다.

가끔씩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맥날리가 여전히 집근처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다시는 가볼 수 없는 곳이 될 수도 있기에 더욱 그립다. 그래서 여전히 마음에 새기고 있다. 그곳에서 본 것, 느낀 것, 배운 것. 나의 삶에 조금이라도 흔적이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보고 싶다, 맥날리 로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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