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을 삽니다"
#.1
골목 끝에 그 가게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얀색 벽돌을 쌓은 문 앞에 작은 창문이 있는 갈색 문, 그리고 그 옆의 갈색 테두리의 창문까지. 듣던데로 간판은 없었다. 알고 찾아오지 않는 이상, 그냥 지나치기 쉬울 정도로 가게라고 말하기도 조금 어색했다.
여자는 갈색 문 앞에 망설인 채 서 있었다. 듣던 대로 가게는 있었다. 듣던 대로 갈색 문에 간판은 없었다. 그녀가 찾던 가게는 존재했고 그녀가 반신반의했던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호기심에 찾아오긴 했지만, 막상 눈앞에 서 있는 갈색 문을 바라보니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아서 여자는 자신의 팔뚝을 간지럽히는 두려움을 느꼈다.
‘끼익-‘
여자가 망설이는 동안 문 건너편의 존재가 먼저 문을 열고 여자의 경계선 안으로 들어왔다. 베이지색 셔츠에 갈색 문 만큼이나 진한 고동색 조끼를 위에 입은 노인이었다. 머리에는 이미 희끗희끗 하얀 세월이 내려앉은 노인은 자신의 문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보며 말했다.
“어디, 재밌는 꿈을 꾸셨나 보군요.”
노인의 따뜻한 말투에 여자는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가게 안에 들어선 여자가 말했다. 밤새 내린 비로 기온이 떨어진 탓에 노인은 손을 삭삭 비벼 온기를 만들며 대답했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에게 물건을 파는 것처럼 손님의 꿈을 이야기해주시는 거죠. 다만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 꿈 그 자체의 이야기를 전해주실 때 가장 좋습니다. 가끔은 있는 그대로의 꿈이 아닌 기억에 의존해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는데 그런 거짓 꿈은 좋은 값을 받기 힘듭니다.”
여자는 가게 안의 소파에 앉으며 그 ‘값’에 대해 질문했다. 속물적으로 보이진 않을까 싶었지만, 여자의 목구멍을 맴도는 호기심은 여자의 입을 열게 하였다. 노인은 두 개의 티백을 꺼내 컵에 담고는 주전자 포트의 뜨거운 물을 부었다.
“사실 기준이라고 정한 것은 없습니다. 그저 꿈 이야기를 듣다가 이 이야기가 이 세상의 흔한 이야기가 아닌 정말 꿈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라고 판단될 때 값이 정해지죠. 사람의 머리로는 만들 수 없는 이야기라고나 할까요. 정말 꿈에서만 가능한 그런 이야기. 세상에는 재밌는 꿈도 있고 이상한 꿈도 있고 무서운 꿈도 있습니다. 대부분 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꿈은 이상한 꿈이 많더군요. 아마도 무서운 꿈은 한시라도 빨리 잊고 싶은 마음에 그 다음 날이면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제 가게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해몽을 해드리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저 꿈 이야기를 듣고 제가 얼마나 재밌게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에 따라서 값을 매겨드립니다. 그렇게 지난밤 꾸었던 꿈 하나를 저에게 파시는 거죠. 당신에겐 그저 매일 꾸던 꿈의 하나일 뿐이고, 저는 그 꿈을 사는 것이니 어차피 잃을 것은 하나도 없고 얼마의 돈이든 당신은 얻게 되는 것입니다.”
노인은 컵을 여자 쪽으로 건넸다. 눈가로 퍼지는 은은한 미소를 보니 이 노인의 말은 거짓이 없는 진심이라고 느껴졌다. 노인과 나란히 소파에 마주 앉은 여자는 가만히 가게 안을 바라보았다. 오래된 소파와 노인이 혼자 쓰는 듯한 책상과 의자가 전부인 가게였다. 벽에는 수묵화가 걸려있었고 구석에는 제법 크기가 있는 화초가 서 있었다. 은퇴 후 취미 활동으로 하는 가게인가 싶기도 했다. 여자는 이 노인이 이 가게의 업종을 무엇으로 등록한 걸까 궁금했다. 그리곤 이런 것이 궁금한 것을 보니 세무사 사무실의 비서라는 자신의 직업이 떠올라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사실 여자에겐 하루에도 몇 번씩 웃음을 참아야만 하는 상황이 있었다. 자신의 상사인 세무사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이상한 발음으로 영어 단어를 말하는 것이 들려오면 그때마다 여자는 뿜어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야만 했다.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여자는 애써 키보드로 고개를 숙였다. 이번 역시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음, 며칠 전 밤의 꿈이었어요.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고 항상 그렇듯이 출근하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먹고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죠. 저는 사실 꿈을 많이 꾸는 편이지만 대부분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게다가 아침에 출근하다 보면 다 까맣게 잊어버리죠. 하지만 그 꿈은 조금 다르더라고요.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어요. 생각날 때마다 금방이라도 다시 그 꿈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말이죠. 친구에게 이상한 꿈을 꿨다고 말하니 이 가게를 말하더라고요. 직장 동료한테 들은 적이 있다면서….”
“그렇군요. 혹시 그 친구분에게 꿈 이야기도 하셨나요?”
“오, 아니에요. 그냥 머릿속에 맴도는 이상한 꿈이 있다고만 했어요.”
“좋습니다. 꿈은 이야기하면 쉽게 사라지죠. 오직 본인의 머릿속에만 남아있는 꿈을 저에게 온전히 이야기해주셔야 저도 그 꿈을 살 수가 있답니다. 저에게 값을 받고 꿈을 파시고 나면 그 꿈은 더는 손님의 것이 아니에요.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이야기하시겠습니까?”
여자는 잠시 망설여졌다. 꿈이라는 것이 손에 잡히는 물체도 아닌데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꿈이 더는 내 것이 아니게 된다는 노인의 말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노인의 말대로라면 여자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꿈이 여자의 입을 통해서 꺼내져 노인의 서랍 속으로 가져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자에게 손해 보는 것은 없었다. 노인의 말대로 그 꿈이 더이상 내 것이 아니어도 사실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하루 이틀이 지나고 나면 여느 때처럼 까맣게 잊어버릴 텐데 적은 돈에라도 그 꿈을 주고(팔고) 용돈 벌이라도 하면 여자에게는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었다.
“꿈에서 저는 길을 걷고 있었어요. 손에는 작은 돌을 쥐고 있었지요. 사실 꿈에서 저는 제가 눈을 감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볼 수가 있었죠. 어쨌든 꿈이란 그렇잖아요?”
여자는 자신의 말도 안 되는 꿈을 이야기하려고 보니 왠지 민망해 노인의 눈치를 살피며 동의를 얻고 싶었다. 하지만 노인은 이 대화에서 자신의 역할은 그저 라디오를 듣는 청취자처럼 입과 눈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귀만 존재하는 사람처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여자는 체념한 듯 계속 이야기를 이었다.
“아무튼, 제 손에는 돌이 있었고 저는 눈을 감고 있었죠. 가만 보니 주변에 걸어가는 사람들 모두 손에는 돌을 들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들 모두 눈을 감고 있었어요. 돌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모두 마치 볼 수 있는 사람들인 것처럼 흔들림 없이 길을 걸어가더군요. 저는 문득 눈을 뜨고 싶었어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눈을 감고 있었음에도 주변을 볼 수 있었어요. 아니… 어쩌면 주변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눈을 살짝 뜨니 이내 주변 시야가 환하게 저를 맞았죠. 그리고….”
노인을 바라보던 여자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자신조차도 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이,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이 이야기를 계속한다는 것에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노인은 조용히 여자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뜨는 순간 손 위의 돌에 불이 붙었어요. 마치 폭발한 화산에서 터져 나온 돌처럼, 용암에 몇만 년이고 달군 돌처럼 정말 너무나도 뜨거웠어요. 제가 만약 어린아이였다면 놀라서 이불에 오줌을 지렸을지도 몰라요.”
여자는 자신의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웃긴다는 듯, 자신도 이 이야기가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노인은 여전히 여자의 감상적인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저 꿈 이야기만 듣고 싶은 것처럼 여자가 이야기를 이어가기를 기다렸다.
“아무튼, 눈을 뜨니 돌이 뜨거워졌어요. 손바닥이 다 화상 입는 것처럼 너무나 뜨거워 깜짝 놀랐어요. 얼른 눈을 감아버렸죠. 그랬더니 다시 돌이 식더군요. 여전히 손바닥은 따끔거리고 뜨거웠지만 어쨌든 눈을 감으니 돌이 식었어요. 다시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워졌죠. 저는 놀라서 길바닥에 우두커니 선 채로 고민에 빠졌어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훔쳐보기 시작했어요. 자세히 보니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어요. 다들 자기가 걷고 있는 길을 확인할 때마다 눈을 떠야 했고 그때마다 돌이 뜨거워진 덕분에 끔찍한 고문에 시달리는 사람들 마냥 자신을 고통 주며 길을 재촉하더군요. 고통이냐 시력이냐 마치 이 두 갈림길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목욕탕에서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사람들 같아 보여서 저는 웃음이 터졌어요. 제가 원래 한번 웃음이 터지면 잘 못 참는 타입이라서 진지한 상황에서 난처한 경우가 좀 많은 편이긴 한데 꿈에서도 그러더라고요. 제가 마구 웃으니까 다들 궁금한 듯 눈을 살그머니 떴고 동시에 고통의 비명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죠. 얼마나 애처로우면서도 웃기던지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때 제 눈에 한 유모차를 끌고 오던 여자가 보였어요.”
여자는 잠시 말을 멈췄다. 노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노인은 반대쪽 소파에 앉아 두 손을 모아 포갠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든 것 같지는 않아 보여서 여자는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꿈에 나타나는 모든 사람은 최소한 한 번씩은 제가 본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길을 가다가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꿈에서도 그렇게 엑스트라 역할을 한다고 거지요. 뭐, 믿을만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아기엄마도 스쳐 지나가던 사람 중의 하나였을지는 몰라도 꿈에서는 제가 저 아기엄마를 안다고 확신했어요. 아기 엄마는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아기 엄마답지 않게 아주 날씬했어요. 하얀색 원피스인가, 투피스 같은 옷을 입었던 것 같았고 머리는 하나로 가지런히 묶었더군요. 그때 그 유모차 안에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아기 엄마는 길을 멈추고 유모차를 향해 고개를 내리더군요. 눈을 떠야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유모차 안에서의 울음소리가 더 커지니 아기 엄마는 모성으로 두려움을 극복한 것처럼 망설임 없이 눈을 뜨더군요. 동시에 그 고통스러운 비명…. 그 아기 엄마의 손은 뜨거워진 돌 때문에 완전히 빨개졌어요. 저는 안타까웠지만 그 아기 엄마를 도우려면 제 눈도 떠야 했기 때문에 감히 다가갈 수가 없었죠. 아기 엄마는 다시 눈을 감았고 돌은 식었는지 비명도 줄어들더군요. 하지만 유모차 안의 아기는 울음을 멈추질 않았어요. 아기 엄마는 아기가 왜 우는지 배가 고픈지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것인지 어디 아픈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눈을 다시 떠야만 했죠. 아기 엄마는 다시 용기를 내서 눈을 뜨고는 입으로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아내며 아기를 살피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돌은 아기엄마의 손바닥 위에서 더 격렬히 발광이라도 하듯 뜨거워졌어요. 아기 엄마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돌을 들고 있는 자신의 손목을 반대 손으로 붙잡고 주저앉았어요. 하지만 주변 누구 하나 그 아기 엄마에게 다가가지 않았어요. 다들 눈을 뜨는 고통을 감수할 수가 없었겠죠….
그 비명 소리에 저 역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손바닥이 빨갛다 못해 까맣게 타들어 가는 그 모습이 더이상 모른척 할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 아기 엄마에게 달려갔어요. 주저앉은 아기 엄마를 옆으로 밀어내고 유모차를 보기 위해 눈을 떴죠. 제 손바닥의 돌이 뜨거워지면서 저 역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어요. 하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유모차의 아기를 덮고 있던 담요를 걷었어요. 거기엔….”
여자는 더는 웃지 않았다. 자신 역시 그 꿈에 깊숙이 빨려 들어가 다시 그 꿈속의 길을 걷고 있었고, 그 눈을 뜨면 뜨거워진다는 돌을 손에 쥐고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다른 손으로 손바닥을 문질렀다. 문지르면 화상 자국이 보일 것처럼, 그럼 ‘이봐요! 진짜였어요! 꿈이 아니었어요!’라고 당장에라도 외칠 기세로 여자는 몹시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 유모차 안에는 돌… 그 뜨거워지는 돌이 있었어요. 물론 모두 손에 들고 있던 돌처럼 작은 돌이 아니라 아기 크기만 한 돌…. 검은색 돌이 있더군요. 저는 너무 놀라서 손바닥의 고통도 잊은 채 아기 엄마를 뒤돌아 쳐다봤어요. 그랬더니 아기 엄마가 저를 보고 웃고 있더군요. 눈을 분명히 똑바로 뜬 채 저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어요. 마치 엄청나게 재밌는 구경거리를 보았다는 듯이 자질 러듯이 웃었어요. 저는 손바닥이 너무 뜨거워 더이상 견딜 수가 없었고 다시 눈을 감아버렸죠. 그리고는 꿈에서 깨어났어요.”
꿈 전부를 이야기하고 나니 손바닥에서 그 돌을 내려놓은 것처럼 여자의 가슴이 후련했다. 여자는 차를 조금 마셨다. 차는 그새 식어 더이상 뜨겁지 않았다. 여자는 그 느낌이 좋았다.
“아기엄마는 왜 당신을 보고 웃었을까요?”
“글쎄요. 제가 멍청하다는 듯 그런 웃음이었어요.”
“그렇군요. 꿈에는 이유가 없으니까.”
“왜요, 꿈은 무의식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럼 그 뜨거워지는 돌이나 유모차도 손님의 무의식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나요?”
여자는 잠시 생각했다.
“아뇨…. 그렇게 생각되진 않아요. 전 그렇게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제가 보기엔 상상력이 무척 풍부한 분이신 것 같은데요. 이 세상은 손님을 웃게 하는 손님만의 상상이 아주 가득한 곳 같은데요.”
노인은 여자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여자는 왠지 기분이 좋았다. 어려서부터 가족이며 친구들이며 웃기지 않은 상황에서 웃음을 터트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핀잔을 주었고 그녀는 항상 자신의 상상을 억누르는 훈련을 길러야만했다. 그러고 보니 웃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어쩌면 잔인한 상황에서 웃음을 터트린 아기엄마의 웃음소리는 자신과 무척 닮은 것 같았다. 노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남은 차를 마셨다. 여자는 노인에게 물었다.
“사주실 만한 꿈인가요?”
“매우 살만한 꿈이죠.”
노인은 책상 서랍에서 하얀색 봉투를 꺼내 여자에게 건냈다.
“꿈을 팔 용기를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갈색 문을 뒤로 한 채 여자는 다시 길거리로 돌아왔다. 마치 저 갈색 문 안은 시간이 멈추는 장소인 듯 그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있었던 기분이었지만 시계를 보니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여자는 걷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꿈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기분이었다. 분명 머릿속을 헤집던 꿈이었는데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유모차가, 아기 엄마가, 그리고 손바닥 위의 돌이 사라졌다. 이내 여자는 그냥 어떤 꿈을 꿨던 것 같은데 싶어졌다. 하지만 여자는 개이치 않았다. 더는 상관이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골목이 떠나가도록 깔깔 웃고 싶었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 웃어보는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