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에게 아직 못한 이야기

by 김세환

지난주, 직원 중 하나가 가슴 안에서 봉투에 쓴 이름을 확인하며, 작은 쇼핑백에 수제쿠키를 하나씩 직접 찾아다며 나눠주고 있었다. 진작 알고 있었으나, 나까지 오려면 아직 멀었다. 브레이크 타임을 갖기 위에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 직원은 따라왔는 데 몸짓이 어정쩡 쭈뼛하다. 속주머니에서 얼마나 오래 갖고 다녔는지 모서리가 구겨지고 건네받은 봉투는 따뜻했다. "부장님! 저 이거 좀....", "엉, 뭔데?" 손에 힘을 주어 이름과 직함을 쓰려고 정성은 드렸지만, 타고난 악필은 어쩔 수 없다. '하나 되는 날, 김 성혁 & 조 윤아' 청첩장이다. 모바일 시대에 문자나 카톡으로 보낸 것만 받아왔는 데, 오랜만에 신선하다. 편리함보다는 일일이 찾아다니며 전하는 마음이 고맙고 예쁘다. "정말 축하하고, 꼭 갈게." 약속했다.

봉투를 열어 신부의 이름에서 내 눈은 고정되었다. 9년 전, 딸아이 고등학교 1학년. 결혼식은 힘들었다. 사방에서 넘쳐나는 사람들, 혼돈을 뚫고 축의금을 지불하고 식권을 받는다. 방문록에 이름을 쓰는 사람, 아직 아는 사람이 없어 눈을 정신없이 굴리는 사람, 아이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도 서로를 탐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예식이 끝난 좁은문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토해낸다. '식당이 어디냐'고 서로에게 물으면서도 어디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시장통에서 신부대기실만이 가장 조용하고 엄숙한 장소다. 쇄골까지 노출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신부는 이날의 주인공을 알리며 친구들에게 포위되었다. 신부와 같은 하얀색을 입으면 평생 그들 사이의 질타의 대상이 된다. 오직 신부만이 돋보여야 한다. 아무리 예쁜 친구도 오늘만큼은 구석에 기꺼이 벽에 박힌 못처럼 서 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시 30분 결혼식 시작된다. 주례자가 서 있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신랑, 신부 어미들은 화촉을 밝히고 급한 듯 신랑 발걸음이 빠르다. 결혼행진곡이 울리고 신부의 손이 아비 손위에 살짝 얹혔다. 두 손에 흰 장갑이 그들의 경계에 금을 긋는다. 야속하다. 아비는 어디서 울고 왔는지 손수건을 꺼내 연신 눈을 찍고 있다. 딸아이는 자존심이 강하기에 눈을 깜빡여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딸아이가 아비손을 꽉 잡았다면, 흰 장갑을 벗어던지기라도 했더라면 아비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여기서 달아나리라. 아직도 아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세상에는 두 사람이 같은 순간에 같은 것을 바라는 일은 거의 없다. 때로는 바로 그 점이 지금 아비로서 가장 힘든 부분이다. 딸아이가 먼저 발을 앞으로 천천히 옮긴다. 아비도 몇 번 봤을 뿐인 낯선 이방인을 노려보며 걸어가지만 사실 신부에게 매달려 있다. 얹힌 손이지만 딸아이가 이렇게 힘이 셀 수는 없다. 나란히 걷는다기 보다는 딸아이보다 한 뼘씩 느리게 끌려간다. 아비는 흰 장갑 사이 마지막 따스함을 느끼며 인생 최대 비극의 순간, 노려 보던 이방인에게 딸아이의 손을 건네준다. 홀로 신부석으로 돌아오는 그 짧은 시간에도 신발 속 작은 돌멩이가 돌아다는 것처럼 디딜 때마다 발이 아프다. 더 이상 따스함을 느낄 수 없는 손은 얼음을 쥐고 있는 듯 차다. 좁쌀이 들어간 듯 깜빡이는 눈에는 뜨거운 액체가 흘러나온다. 빰으로 흘러내린 물이 짜다. 모든 육체가 심장으로 모여들어 아비의 모든 감각을 마비시킨다. 어미는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주지만 아비는 주체할 수 없다.

나는 내 딸아이를 생각하며 그 아비와 같이 짠맛을 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 결혼식을 볼 수가 없었다. 주차장으로 달려가 차 안에서 나의 딸아이와 신부가 바뀌고, 내가 그 아비로 빙의해 한참을 울었다. 아비의 세대에서 딸아이의 세대로 넘겨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딸아이는 아비에게 있어서 한세대, 30년의 기억을 선명히 가지고 있다. 딸아이의 핏덩어리 출생을 보았고, 손으로 병아리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을 때처럼 그 따스함과 신비로운 꿈틀거림이 아직 나의 가슴을 뛰게 한다. 발을 잡고 놀다가 엉겁결에 뒤집기에 성공을 했지만 뭔가 잘못됐다고 어리둥절해하며 잠시 나를 바라보고 울던 귀여움. 흰 찐빵 모자를 쓰고 첫 산책에서 딸아이는 푸르른 들판들보다 더 싱그러웠다. 뒤뚱뒤뚱 걸음마를 했을 때도 불안해 차라리 안고, 업고, 목마를 태우고 다녔던 기억들. 방글라데시에서 휴가차 집에 왔을 때 옆자리로와 나의 팔 위에서 잠들었던 딸의 숨소리. 미술학원에서 그린 나는 작고, 유독 엄마만 크게 돋보였던 그림.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친구들과 서로 긴장해 곁눈질하는 뽀글이 파마.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는 고사리같이 움직이던 손가락. 독일에서 나올 때 10년 후 딸아이와 다시 오기로 아내와 약속하고 초등학교 4학년때의 무모했던 유럽여행. 중학교에서 인싸가 되어 생일날 친구들의 넘치는 선물에 나를 급히 호출하며 핸드폰을 넘어 들렸던 떨림의 목소리. 고등학교 졸업생 대표로 강대상에서 외치던 당참.... 또 한정 없이 써 내려갈 수 있는 기억들을 온몸으로 가지고 있는 아비가 낯선 침탈자에게 강탈당하는 시간이 영원히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사치일까? 온몸으로 기억하는 딸아이를 고작 몇 개월, 몇 년의 만남으로 훔쳐가는 것이 진정한 사기가 아닐까?

1월 18일, 나는 직원의 결혼식장에 갈 것이다. 또 축의금만 내고 신랑에게 '내가 왔음'을 알리고 식당으로 직행할 것이다. 아내는 '축하도, 예식도 보지 않고 식당으로 바로 갈 거면 계좌이체만 하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아무에게도 그 이유를 9년간 말하지 않았다. 신부만 보면 딸아이로 오버랩되어 발 속의 돌멩이가, 얼음쥔 손이, 좁쌀 들어간 눈이, 그리고 짠맛이 나의 심장으로 파고들어 아프다. 곧 닥쳐올 인생 최대의 비극을 나는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딸아이의 흰 장갑에서 손을 놓을 자신이 없다. 나의 손을 꽉 잡는다면 거기로부터 달아날 용기가 결코 없다. 이것이 바로 나로서 가장 힘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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