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이야기
커다란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비슷한 삶을 산다. 먹고, 자고, 일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늙어가고, 이내 죽는다. 그럼에도 이 보편적인 삶의 궤도 안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럼에도 내가 풀어낼 이야기는 가슴 절절한 사연이 담겨 있거나 누구나 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담은 아니다. 그냥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이고, 그들의 삶, 특히 나의 일상과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록일 뿐이다.
하지만 보통의 이야기보다는 다소 우울하고 답답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치매 노인과 함께 사는 일은 생각보다 버겁고, 가족 구성원 모두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빠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을 뿐,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버거워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할머니와 함께 했던 좋은 기억들마저 간병으로 인해 슬픔과 분노와 원망으로 변질되는 것 같다.
생각보다 무거운 마음을 가슴에 지닌 채 살아가는 일은 몹시 힘들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대신 나를 위해 용서하라는 것은 이런 의미인가 보다. 하여 더 늦기 전에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감정과 기억들을 글로써 차분하게 풀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할머니와의 일화와 더불어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나만의 일상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싶었다. 어쨌든 이 시간 또한-나 역시 기억이 희미해지는 때가 오면-나에게는 그리운 젊음의 순간들일 테니까.
부정하고 싶지만 이것은 우리 부모님의, 혹은 나의, 내 동생의 피할 수 없는 미래의 한 단면일 테다. 어쨌든 사람은 누구나 늙고, 퇴행은 필연적이니까. 인간은 쉬이 망각하는 동물이라, 막상 닥치면 처음 겪어보는 일 마냥 생경하고, 이내 힘겹고 두려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 읽으며 ‘이렇게 웃는 날도 있었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어’라고 떠올려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냥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때는 부디 지금의 나보다 좀 더 초연하고 여유롭게 고된 삶마저 품을 수 있길. 그리고 마냥 불행한 일이라 느끼지 않길. 미래의 우리 가족에게 이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할머니와 나의 우주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