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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isie Sep 11. 2020

Homo Avoidancus [회피하는 인간]

내 머릿속의 스펀지밥

이상 신호를 감지한 것은 친구를 떠나보내고 6개월 정도가 흘렀을 무렵이다. 나와 친구를 동시에 알고 있는 지인들이 나의 변화를 감지한 것이었다. 나라면 하지 않았을 말과 행동, 즉 내 친구가 할 법한 말과 행동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울 수도 있지만, 나에게 소울 메이트가 있다면 그녀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우리의 취향과 내면은 꼭 닮아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라이프 스타일만큼은 정반대였었다. 그런데 나도 인식하지 못한 상태로 친구의 삶을 흉내 내고 있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짐을 느낀 지인들은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했다.

그렇게 다시는 찾아가고 싶지 않았던 병원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을 마주했다. 몇 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번엔 여자 선생님이라는 것, 그리고 햇빛을 가득 머금은 아늑한 진료실이라는 것이었다. 아마 이전처럼 형광등 불빛만 어른거리는 어두컴컴한 진료실이었다면 나는 자리에 앉지 못하고 바로 나가지 않았을까. 어딘지 편안하고 정갈한 방의 분위기에 이끌려 차분히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혐오스럽고 괴로운 일인지.

내 친구는 자살했다. 그녀가 야심 차게 모아 온 약들을 잔뜩 털어 넣은 채 쓰러졌고, 그 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다가 끝내 생을 마감했다. 그녀가 그 많은 약들을 모을 수 있도록 처방해준 병원은 내가 그녀에게 소개해준 곳이었다. 당시 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그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었다. 원인은 수년간 이어져온 지도 교수와 실험실 선배들의 폭언, 그리고 집단 따돌림이었다. 그때 하루 평균 14시간 이상, 주 7일을 실험실에서 보내야 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인격모독과 인신공격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에게도 상담을 받아볼 것을 추천했던 것이었다.  

다만 그녀는 좀체 마음이 맞는 상담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고 결국에는 상담 치료 대신 약물 치료만 받았다. 그녀가 어떻게 처방을 받아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친구의 집을 정리하면서 찾아낸 약봉지에는 일회분의 봉지 안에 10개가 넘는 약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곳을 소개해준 나를 원망했다. 그 의사에게 이 약들을 처방받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 병원에 가볼 것을 권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 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않았더라면, 내가 폭언과 따돌림에 시달리지 않았더라면, 내가 나약하지 않았더라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나는 친구가 자살을 시도한 뒤로 그 병원에 발 길을 끊었고 어떤 상황에 처하든 다시는 상담이나 약물 치료 따위는 받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1년 만에 다른 의사 앞에 앉게 된 것이었다. 누구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분노를 느꼈고, 치욕스럽고 비참하기도 했다. 나는 정말 구제불능이라는 생각과 함께 있는 힘껏 스스로를 비난했다. 그러다 나에게 꽤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친구가 죽기 전 6-7년 간의 기억이 듬성듬성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누구 때문에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긴 시간 동안 구체적으로 나에게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나쁜 기억들 뿐만 아니라 좋은 기억들 역시 블러 처리를 한 사진들처럼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했다는 일이나 말 중에는 아예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많았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특정 하게 사라져 버린 나의 기억들을 어쩌면 좋을까. 이 거짓말 같은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리고 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의심스러워졌다. 대체 내가 기억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디까지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잃어버린 소중한 순간들의 기억은 되찾을 수 있는 걸까? 정말 하다 하다 별 걸 다 한다 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별 볼 일 없는 내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참 스펙터클 하다.

흔한 말로 책을 써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황당한 일이라 이렇게 글로 적기 시작했다. 대략 진료를 받고 3년 정도 지났을 즈음부터였다. 내 소중한 20대 청춘, 그중의 절반을 그냥 망각의 우주 저 편으로 보낼 순 없었다. 조그마한 기억의 단서라도 얻을까 싶어 정신을 놓고 끄적이다 보면 불현듯 스치는 기억들도 있었다. (역시 때로는 손과 발이 머리보다 낫다.) 그렇게 무언가를 붙잡기 위하여 생각과 감정의 변화들을 쓰고 읽었다.


덕분에 그동안 외면하고 싶었던 나, 이제는 낯설기까지 한 나를 들여다 보고,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듬성듬성 구멍이 난 나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과거에 내가 어땠는지는 차차 알아 가면 될 일이니까. 때가 되면, 내 마음이 준비가 되면 한 장씩 뿌연 장막을 거둬줄 것이라 믿는다.


어쨌든, 감사일기

여전히 대부분의 기억들이 또렷하지 않아 답답하지만, 조급해지지 않기로 했다. 어떤 식으로든 기억 속에 꽁꽁 싸여 봉인되어 있을 뿐, 온전히 휘발되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동안 언제, 어떤 것이 계기가 되어 톡톡 떠오를지 모를 일이다. 설령 끝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때의 기억들은 그저 흘려보내야 삶의 조각들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날보다 앞으로 기억해야 할 날이 더 많이 남아있다. 하여 나는, 오늘의 나에 대해 써 내려가면서 현재에 마음을 매어두는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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