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서, 진창 같은 무기력 속을 헤매던 작년의 어느 여름날은 마음에 커다란 가시가 들어오는 듯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지도 몰라.
마음속에서 울려오는 직감에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그림 그릴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준비를 하고 앉아서 펜을 들자 어김없이 마음이 무거워지고 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의 두려움이 더 컸기에 애써 몸과 마음의 신호를 무시하고, 그릴 대상을 찾은 후 선을 긋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8분. 결국 포기합니다. 역시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했습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환한 모니터에 파란선으로 휘갈겨 그린 스케치가, 무언가 어떤 가능성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2018년 8월 4일의 일입니다.
그렇게 1년 동안 스케치로 남아있던 첫 시도를 2019년 어느 여름날 다시 꺼내 봅니다. 이제 어느 정도 회복을 했으니, 마무리하는 의미를 담아서 이 스케치를 마저 완성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2019년 12월 12일. 지난해서 막연했던 회복의 시간이 마침내 마무리됩니다.
Date : 2018.08.04 ~ 2019.12.12.
그렇게 1년. 상당히 느린 걸음이었습니다.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참 먼 거리를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도 제법 늘어났고, 이전에는 거의 해본 적이 없던 채색도 이제는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 기점에 서 있으니 예전의 많은 날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날을 걷고 뛰어오면서, 정작 마음을 기다려 본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아, 그래서 마음이, 자기를, 자기를 기다려 달라고 한 것이구나.
그렇게 놓치고 있던 사실을, 너무나도 중요한 그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지난 3년 여의 머무름은 결국, 나의 마음을 기다리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할 일은, 나의 마음과 함께 나만의 보폭으로 걸어가는 일입니다. 온전한 나로서, 다시 또 걷는 것입니다.
1. 매거진〈여백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제목대로 텅 빈 여백에 그림을 그려가며, '한 사람'이자 '창작자'로서 회복하고 성장해가는 마음의 여정을 담습니다. (회복시작 후 25번째 그림)
2. 그 외에도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영상을 통해 공유함으로써, 디지털 페인팅에 대한 이해를 돕고, 디지털이라고 해서 모두가 편법으로 그리는 것은 아님을 널리 알려서, 감동을 배가시켜 드리려는 배려(?)를 하려 합니다. 이는 또한 고요하고 한적해서 슬프고도 아름다워 여러분의 온기가 필요한, 글쓴이의 유튜브 채널로 초대하는 초대장이기도 합니다. 다만 주의하실 점은 아래의 영상을 제외하고, 당장에는 그림을 그려대는 영상밖에 없으니, 디지털 페인팅에 관심이 없으신 분들은, 그래도 한 번 오셔서 구경이라도 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안목을 믿습니다.
3. 아래가 초대장입니다. (목소리가 들어간 영상은 지금으로선 이 것뿐입니다. 귀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