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soner of Myself
1. 회피의 본성
하루가 길기도 하지. 형제가 없으니 친구도 없지.
꼬리 흔드는 옆집 강아지에게 건넨 한마디 "안녕?"이 내 입에서 나온 하루의 첫 말이기 십상이었다. 서울 변두리, 조그만 니트 가게를 운영하는 엄마는 간간히 오는 손님을 응대하랴 알록달록 자가드 무늬의 니트를 짜느라 바쁘셨다. 아빠가 나에겐 좋은 놀이 동무인데, 일이 많아 밤늦게 들어오시는 날이 허다했다. 어린이 월간지 어깨동무와 소년중앙이 나의 유일한 벗이었다.
여섯 살 개나리가 피는 봄, 이사 온 여자아이와 가까워졌다. 멀리는 못 가더라도, 집 앞 개울가와 뒷산 언덕, 소꿉놀이에 하루가 빠르게 지나 갔다. 어느 날, 뉘엿뉘엿 지는 해에 집으로 달음박질하는데, 뒤따라오던 그 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돌아본 순간, 멈춰 선 오토바이와 아스팔트 위에 누운 작은 몸, 그리고 어른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뒤엉켰다.
내가 내달려서 그 아이가 서두르다 당한 사고라는 죄책감과 크게 다쳤을 것 같은 두려움이 어린 나를 짓눌렀다. 집으로 도망치듯 돌아온 그날 이후, 다리에 하얀 붕대를 한 그 아이를 마주쳐도 모른 척 했다. 지나칠 때마다 내가 나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섯 살의 그 기억은 희미하지만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회피하는 유형이다. 문제의 본질을 마주 하기가 두렵다.
2. 분리 불안
외동아이로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탓에, 나 중심으로 생각하는 습관은 버리기 힘들다. 학교와 직장,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즐기느라 바빠, 어머니와 아버지를 늘 보조 출연자로 여겨왔다. 스스로 부모라는 존재가 되고 나서도 부모님을 보는 시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신들께서 내 아이들을 위한 보조를 자청하신 바, 두 분이 나의 삶에서 영영 사라지실 때까지, 우선순위에 두지 못했다.
두 분이 떠나신 후, 내 일상은 근원적인 외로움과 죄책감이 밑바닥에 뒤엉켜있다. 처음 느껴보는 압도적인 부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완벽하지 못하고, 홀로 행복할 수 없는 나라는 사람이 한심하다.
나는 분리불안 환자다. 혼자서 온전할 수 없다.
3. 망각의 습관
그럼에도 하루를 잘 살아내고 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놀기 좋아하고 낙천적인 천성 탓인가? 어머니에게서 온 가만히 있지 못하는, 타고난 에너지 때문인가?
자주 나란 사람의 불완전함을 잊고, 오늘도 시덥지 않은 일에 웃는다.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엄격함 따위는 없다. 그 많은 잘못과 실수를 곱씹어 보는 집요함도 없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지만, 견디기는 쉽다.
망각은 어쩌면 내 자신의 감옥에서 탈출구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