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지 않은 내가 착한 사람으로 살아온 시간
누군가는 내 말레이시아 이주를 보고 도피라고 했고, 누군가는 새로운 도전이라고 했다. 당시의 나에겐 둘 다 맞는 말이었다. 고단했던 회사 생활로부터, 평가되는 느낌으로부터, 좋은 사람이 되고자 애썼던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말레이시아에 왔다고 해서 나 자신이 한순간에 바뀐다거나 모든 상황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문화에 적응하면서, 착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것을 좀 놓을 줄 알게 됐다.
한국에서 이 정도 나이 되면 취업을 하고, 연애하다가 결혼하고, 집도 장만하고, 아이 낳고 하는 것은 더는 필수 코스가 아니게 되었다. 비혼이나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딩크족의 이야기,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시선의 압박이나 무언의 당위 같은 것들이 있었다.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환경이 말 그대로 다이내믹하게 바뀌다 보니, ‘시선의 무게’가 줄어들었다. 외모나 문화가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새로 만드는 인간관계는, 내게 다시 가면을 쓸 것인지, 가볍게 새로 시작할 것인지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한국인으로서 말레이시아에 살면서,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외에도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한가운데에서 내가 모두의 문화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각자의 문화를 지키면서도 어우러져 살아가는 말레이시아 안에서, 나는 또 하나의 다문화를 구성하는 존재였지, 모두의 유사한 기준에 평가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거기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옷과 종교, 문화도 다양했고, 나도 그 다양성의 한 부분이었으며, 애써 기준을 맞추거나 착한 사람이 되고자 할 필요도 없었다. 남들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나를 평가할 만큼 한가한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나라와 문화 속에서, 오히려 나는 온전한 나로 살아갈 기회를 얻었다. 히잡을 쓰고 말레이 전통 의상을 입고 지나가는 분들은 익숙한 풍경 중 하나이다. 그들 옆을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역시 많다. 조금 다른 특성이 있다고 해서 모두의 시선을 받는 일은 드물었다. 물론 외국인이라는 점에서는 나는 조금은 특수한 위치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말레이시아 안에서의 다문화가 용인되는 환경은, 다름이 틀림이 되는 상황을 줄여주었다.
머리 모양, 옷차림, 피부색, 종교, 각자의 차이점은, ‘다르다’는 그 자체로서 받아들여진다. 모두가 같을 필요도 없고, 다르다는 점 자체가 부정되지도 않는다. 애써 착해질 필요도, 기준에 맞추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다르면 다른 그대로 살아가도 되는 나라, 말레이시아가 내게 준 새로운 해방감이었다. 한국에서 차곡차곡 쌓인 나에 대한 인식과 고정관념이 제로는 아니더라도 30% 정도에서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환경이 바뀌고 마음도 바뀌면서 예전과는 다른 삶을 향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