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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ely Dec 25. 2020

6. 도피가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되려면



  말레이시아에서 살면서 좋은 점도 정말 많지만, 새로운 나라,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반에 향수병을 겪기도 했고, 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절차가 필요한 일들에 당황하기도 했다. 먹는 음식도 다르고, 공기도 다르고, 한국어 대신 영어와 말레이어, 중국어 간판이 즐비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친구들과도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 보니, 향수병이 심해진 기간이 있었다. 관공서에서 세금 관련 서류 준비 및 절차도 상이했으며, 한국에선 당연했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은 경우에 당황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도피로만 생각한다면 해외 생활은 절대 낙원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일상 속에서 우선 나부터가 이곳이 해외라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 필요했다. 익숙한 환경이 아니므로, 그간 해왔던 대로 습관을 따르기보다는, 새로 체험하면서 천천히 익숙해지겠다는 느긋한 마음이 중요했다. 한국식 빨리빨리 마인드를 그대로 들고 올 경우 약간은 화병이 날 우려(?)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 분들을 보기도 했다.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사례 중 교통수단을 들 수 있다. 땅이 넓고 대중교통이 활성화되었다기보다는 자동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한국처럼 빠른 배차 간격으로 버스를 이용하기는 어려웠다. 수도권 메인 전철의 경우 배차 간격은 상대적으로 빠르고 일정하나, 지하철역의 분포 자체가 서울처럼 촘촘하지 않기에, 간혹 차로 20분 거리를 지하철로 1시간 30분 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에서 늘 전철로 출근했던 내게 말레이시아 라이프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동하려면 그랩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랩 비용 자체는 좀 저렴한 편이나, 내가 거주했던 코타키나발루나 KL의 생활 물가 차이가 있어서 일관적으로 매우 저렴! 하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그랩이나 택시, 개인 차량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은 시간을 넉넉히 두고 수행하는 마음가짐으로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또 하나는 관공서 방문 시의 마음가짐이다. 역시 넉넉히 시간을 두고, 혹시 오늘 안 되면 다음엔 해결되겠지 라는 편안한 마음이 필요하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거나, 외국인이다 보니 필요한 서류를 미처 다 못 보고 새로 준비해와야 한다든지, 업무 분야별로 마감 시간이 다른 경우 오전에만 처리 가능하다든지 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이는 로컬이 아니기에 해외 생활한다면 어느 나라에서든 겪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한 번에 착착 모든 절차가 잘 해결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곳은 새로운 세상이고 이 세상에서 천천히 적응해나가겠다는 생각으로 느긋해지려고 하면, 그리 화날 일도 없었다. 처음에야 당황했지만 지내면서 점점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어떤 일이든 결국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흘러가고 해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급한 성격에 맛집에 줄 서는 것도 잘 안 했던 내가 이렇게 변할 줄은 나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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