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많은 나라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지만, 나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말레이시아에는 아이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자매가 3명만 되어도 다둥이 가족이 되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오히려 1~2명만 낳는 것이 신기해 보이는 것 같다. 왜냐하면 3명은 기본이고 내 친구들의 경우 형제자매가 6~10명까지 되는 경우도 보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친구들 가족의 집에 초대받아 놀러 가는 경우, 북적이는 인파 속 나 홀로 이름 외우기 전쟁이 시작된다.
‘알리, 라지프, 눌, 슈크란…….’
특히 말레이 무슬림 가정에 놀러 갈 때면 이름 외우는 데 더 시간이 걸리곤 했다. 익숙한 영어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가족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이름을 잘못 부를까 봐 빨리 외우기를 시도하곤 했다.
말레이시아는 여러 종교와 민족을 포용하기 때문에, 각 종교와 방사(bangsa, 민족으로 볼 수 있다)에 따라 다른 문화를 향유하고 있지만, 대체로 형제자매가 많고, 아이들이 많은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긴다는 느낌을 받았다. 출산율이 한국보다 높은 것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할 것이다. 지원 정책, 경제적인 내역, 종교의 영향, 세대별 라이프스타일과 비중을 두는 가치, 육아에 대한 인식 등. 여러 부분을 고려해봤을 때,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부부가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는 것이 쉽지는 않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누군가 육아를 도와주지 않으면 상당히 힘들며, 부부 중 한쪽이 집에서 전업 육아를 한다고 하면, 사회생활이 줄어들고 육아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출산 시 제반 비용에 관해 IC 카드(주민등록증)가 있으면 병원비 지원 비중도 상당히 높으며, 무엇보다 엄마에게 주어지는 내외적인 부담이 조금은 덜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크게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모든 가정을 본 것은 아니지만, 가족 구성원들이 많다 보니 아이들이 자라면서 외로움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가족이 많아서 생기는 이슈들에 봉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형제자매가 가족이자 친구가 되고, 명절이면 수많은 가족이 시끌벅적하게 모여서 서로의 소식을 나누는 모습이, 원가족 자체도 핵가족에 명절 때 바빠서 친척들과 모두 모이기는 어려웠던 나와는 달라서 새삼 신기했다.
말레이시아는 크게 보르네오섬 북쪽의 동말레이시아와 반도의 서말레이시아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동말레이시아와 서말레이시아에 모두 살아 보았는데, 새해나 이슬람 명절 하리라야 등이면 많은 인구가 고향으로 돌아간다. 주가 많고 동말레이시아와 서말레이시아를 오갈 경우 비행기를 이용해야 하니, 3명 이상의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향하는 가족들을 볼 때마다 새삼 한국의 민족 대이동 추석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자유 영혼인 나조차도 가족들과의 명절이 새삼 그리워지곤 했다. 아이가 많고 가족 구성원이 많다 보니 때로는 서로 안 맞는 부분이 자주 발생할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한편으로는 단란하고 풍성하게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든든한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흐뭇하기도 했다. 커서도 형제자매와는 물론이고 사촌들과도 친구처럼 교류하고 자주 만나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을 보면서, 바빠서 자주 보지 못했던 사촌 동생들과의 단체 톡방에서 그룹콜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