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
한국에서 내 집 마련이란 멀고도 험한 길이다. 모두가 뚝딱하고 집을 마련할 수 있을 만큼 녹록지가 않다. 치솟은 집값에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사람들이 많다. 내가 말레이시아에서 외국인으로서 거주하면서, 집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우선 외국인이고 employment pass로 거주 중이니, 아예 이민을 온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집을 살 생각은 선택지에 애초에 없었다. 외국인으로서 월 렌트로 집을 구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했고, 장기적으로 고려할 것이 아니라 당장 회사와 가깝고 거주하기 좋은지, 내가 이 집에서 행복할지를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당장 목돈으로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한국보다는 저렴한 가격으로 집을 렌트할 수 있다는 것이 말레이시아 살이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매일매일의 행복과 만족을 누릴 수 있다는 점, 굳이 뼈를 깎듯 열심히 일해 대출을 끼고 내집마련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게 현재를 살아나갈 수 있겠다는, 나의 순간순간을 보듬어주는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겠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났다. 동일한 집 컨디션이라면 1.5배에서 2배 정도를 내야 한국에서 거주할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조건으로도 지낼 수 있다. 물론 중심 도시와 얼마나 가까운가에 따라 집값이 천양지차인 것은 한국이나 말레이시아나 마찬가지이다.
쿠알라룸푸르에서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할 때, 하우스 쉐어와 스튜디오 렌트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우스 쉐어는 콘도 아파트 하나 안에 마스터룸, 미들 룸, 싱글룸 등 여러 방이 있어서, 각자 한방에서 거주하고 거실 등을 쉐어한다. 마스터룸 안에 화장실이 있고, 미들룸과 싱글룸 사용자는 거실의 공용화장실 2개를 쉐어하기도 한다. 스튜디오 렌트는 말 그대로 혼자 스튜디오 하나에서 거주하는 것이다. 나는 하우스쉐어도 해 보았고, 스튜디오 렌트도 해 보았다. 각각의 장단점이 명확했다. 하우스쉐어는 쉐어가 장점이자 단점이다. 여러 사람이 있어서 집에 있을 때 적적하거나 외로움이 덜할 수 있고, 반면 여러 사람이 있어서 같이 살면서 불편하거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물론 아예 아주 친한 친구들과 함께 쉐어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스튜디오 렌트는 쉐어보다 당연히 가격이 비싸지만, 혼자 자유롭게 지낼 수 있고, 반면 때로 외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넓은 집에 나 혼자 있을 때, 게다가 코로나로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지면서, 차라리 하우스쉐어 때가 좋았구나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우스 쉐어를 하면서 당시 무슬림 자매, 중국계 학생과 함께 살았다. 서로 다 모르는 사이인 데다 같이 산다고 절친한 친구가 되기에는 각자의 업무 시간과 휴식 시간이 너무 달랐다. 그리고 친해지기도 전에 코로나가 터졌고, 얼마 안 가 나는 스튜디오로 이사를 나갔다. 한편으로는 종종 부엌을 지나가며 인사를 나누고, 사람 사는 소리가 나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지금은 장기화한 재택근무에 누워서 일할 수도 있어서 행복하지만, 아무도 없는 밤에 나뭇잎이 찰랑대는 소리를 들으며 야경을 보고 있자면, 친구를 불러와서 같이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했다. 초반 6개월 때까지 불쑥불쑥 치밀던 향수병이 지나간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사람 사는 온기가 그립다. CMCO(Conditional Movement Control Order)가 끝나면, 더 예쁘고 깔끔한 곳으로, 하우스 쉐어하는 곳으로 이사를 가볼까도 싶다. 익숙한 환경을 떠나면 더 외로워질까? 아니면 새로운 사람들과 생활의 일정 부분을 공유하며 코로나 시대에도 사람과 같이 있다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