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흥겹고 느린 결혼식
말레이시아에서 결혼식에 갔다
최근에 말레이시아식 결혼식 이브 행사에 갔다. 내 사바 주 친구 지연의 언니의 지인이 결혼했다. 나와는 가끔 얼굴 정도 마주친 사이지만,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결혼 전날 행사에 참석했다. 결혼식 당일은 공교롭게도 최근 다시 발표된 MCO의 첫날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가 금지되기 때문에 우리는 결혼식 이브이자 MCO 이브에 모이게 되었다.
말레이시아식 결혼식에, 신부는 손과 발에 온통 붉은색으로 헤나를 받는다. 말레이식으로 이 헤나를 이나이(inai)라고 한다. 이나이의 전통적인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액운을 막고 좋은 일만 있게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결혼하여 유부녀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신부가 받는 이나이에는 장장 4시간이 걸렸다. 매우 촘촘한 도안으로, 손목부터 손톱까지 그리니 말이다. 더 면적이 넓은 발은 말할 것도 없다.
신부의 이나이를 바라보며, 손님인 우리도 다른 직원에게 이나이를 받았다. 도안은 여러 가지였다. 우리 일행은 10명이었는데, 10명 모두 다른 도안으로 한 명에게 이나이를 받느라, 우리 역시 4시간이 걸렸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다들 손을 모아 사진을 찍는 순간만큼은 뿌듯했다.
결혼식 전날,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이나이를 하고 신부와 사진을 찍으며 소소하게 시간을 보냈다. Mco 직전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일가친척, 친구들이 모였겠지만, mco 직전인 관계로 결혼식용 디자인으로 집안을 꾸미고, 집 근처의 가족,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하는 모양이었다. 결혼식은 한국처럼 예식장에서 하는 경우도 있고, 이처럼 집을 통째로 꾸며 진행하는 경우도 있으며, 온 동네 사람 다 모일 수 있게 광장에서 야외 결혼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의 경우는 일가친척 지인 외에 지나가던 사람들까지도 결혼식을 구경하고 함께 축하하기도 한다. 마을 잔치의 거대 버전이라고나 할까. 30분~1시간 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진행되던 한국에서의 결혼식 문화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빠르게 절차대로 진행되고 점심 먹으러 뷔페가 있는 식당 층으로 가거나, 세팅된 음식을 먹으며 결혼식을 보던, 하루에 한 예식장의 동일한 룸에 3개의 결혼식이 진행되기도 하는 한국과 달리, 말레이시아 결혼식은 느리게 진행된다. 본식 외에 파티까지 하면 최소 2일 정도는 진행된다고 볼 수 있겠다. 새벽까지 노래방 기계와 함께 파티가 이어지기도 한다. 모든 결혼식이 그런 것은 아니다. 노래와 춤 없는 조용한 결혼식도 있고, 종교나 방사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특히 사바 쪽은 항상 노래와 춤이 함께 했던 것 같다. 내 흥이 말레이시아 흥을 못 따라간다.
노래방 기계를 대여해서 돌아가면서 노래도 불렀는데, 여담이지만 말레이시아 사람들 노래와 춤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큰 행사가 있으면 모여서 몇 시간이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한국인이 가무에 능한 흥 넘치는 민족이지만,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흥은 뭔가 한층 더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 일행이 11시에 떠날 때까지도 가무는 계속되었다. 정시에 모여서 정시에 끝나는 결혼식이 아닌, 몇 시쯤 모여서 밥 먹고 담소 나누고 노래하고, 다음 날에 수 시간 동안 식도 진행되고 예쁜 드레스도 각종 색과 디자인으로 갈아입고,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는 긴 호흡의 결혼식이, 바쁘고 시간이 금인 한국에서 보면 다소 놀랍지만, 더 정겹고 실감 나는 결혼식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