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miely Feb 23. 2021

20. 말레이시아에서 설날을 보냈다.

20. 말레이시아에서 설날을 보냈다.


한국 설날과 말레이시아에서의 설날이 같다? 언뜻 생각하면 해외에서 설날이라고 하면 한국인끼리 모여서 보냈겠거니 싶을 것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말레이시아 로컬 분들과 구정을 섭섭지 않게 보냈다.


말레이시아에는 말레이 말레이, 중국계 말레이, 인도계 말레이 이렇게 3개의 방사(민족)가 가장 큰 %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외 다양한 방사가 말레이시아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각 방사와 종교의 여러 휴일이 다 국가 공휴일에 포함된다. 차이니스 뉴이어인 중국의 구정 역시 해당된다. 한국의 설날과 동일한 설날. 줄여서 CNY라고 부르는 설 명절 덕분에 나는 메신저로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설 인사를 보내는 한편, 한국에서처럼 배가 비상 신호를 보낼 만큼 많이 먹고 즐길 수 있었다.



중국 설날이니만큼 CNY 당일 몇 주 전부터 곳곳에 붉은 장식과 붉은색 프로모션이 눈에 띄었다. CNY 할인은 물론이거니와, CNY를 위해 각종 먹거리를 구비하는 사람들로 거리가 분주했다. 내 친구는 믹스 컬처 가족으로 CNY를 크게 지내는 가족에 속해서, CNY 일주일 전부터 음료수와 간식이 박스째 집에 들어오는가 하면, 가족들 다 같이 입을 설날 티셔츠까지 구비되었다. 내 티셔츠도 있었다. 소소한 감동이 몰려오는 한편, 신축년 소가 그려진 빨간 설날용 티셔츠의 디테일에 놀랐다.


조상님들에게 보낼, 세트로 판매하는 옷 모형과 구찌 신발 모형(모두 종이로 되어 있다) 그리고 금색으로 직접 만두 빚듯이 접어서 만드는 돈 모형을 완성해 바구니에 담는다. 이 집에서 포피아 만들기 장인이 된 나는, 종이돈 접기라는 새로운 과제에 봉착한다. 그리고 이 옷과 신발과 돈을 모아서 태워서 하늘로 보낸다. 밤에는 풍등에 이름을 쓰고 아래에 불을 붙여 하늘 높이 날린다. 새까만 밤하늘을 끝도 모르고 날아오르다가 어느 순간 정적처럼 불이 꺼지며 자취를 감추는 풍등을 보노라면, 마치 풍등이 정말 소원을 들고 하늘로 날아올라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미지의 세계로 날아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설 전날 저녁에는 설날용 원탁이 새로 마련되었다. 빨간색 식탁보를 둘렀다. 미리 주문한 음식들과 새로 요리한 설날용 음식들이 식탁을 가득 채웠다. 데코를 위해 조각된 수박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나는 어느덧 식사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식사 전 설날 티셔츠를 갖춰 입고 다 같이 사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직 MCO기 때문에 외부 친구들이 방문할 수는 없었고, 가족들끼리만 오붓하게 보내는 설 이브 저녁이었다.


설날 당일에는 그나마 바로 근처에 사는 집 친척들이 놀러 와서 안부를 물었다. 이날부터 ANGPAO 대란이 벌어졌다. 앙빠오란 우리의 세뱃돈에 해당한다. 세배 없는 세뱃돈이다. 그리고 결혼한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게 행운을 비는 의미로 주기에, 직장인이거나 나이가 30대라도 결혼하지 않았으면 앙빠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새빨간 봉투에 신년을 축하하는 글귀가 적혀 있고, 안에는 말레이시아 돈이 들어 있다. 한국이야 형제자매가 세명만 되어도 많은 축에 속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형제자매가 12명이 되는 경우도 있어서, 결혼한 분들은 세뱃돈 줄 때 파산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올해는 여전히 코로나의 여파로 친척들이 모두 모일 수 없기 때문에 세뱃돈 대란은 심각하지는 않았다.


손님인 나도 세뱃돈을 받았다. 다 모아서 사진을 찍으니 제법 많았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혹시 내가 외롭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많은 사람들 속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설 명절을 즐겼다. 말레이시아에서는 new year를 거의 2월이 끝날 때까지로 생각하는 느낌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아직까지 CNY mood가 집안 곳곳에 남아 있다. 이런 좋은 경험을 하게 해 준 가족들에게 감사하며, 새해의 좋은 기운이 모두에게 퍼져가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전 12화 17. 말레이시아에서 결혼식에 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