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우가산)
이사 온 셰어하우스, 우리 집에 가수가 산다. 우리 집 4명의 하우스메이트들에게는 다채로운 특별함이 있다. 우리의 국적도 다양하고, 종교도 다양하다. 나는 한국인이고 종교가 없고, 한 명은 인도네시아인이고 무슬림, 한 명은 인도네시아인이자 불자이고, 마지막 한 명은 차이니스계 말레이시아인이고 기독교인이다. 집주인이나 에이전트를 통해 관리하는 셰어하우스 중에는 아주 간혹 특정 종교나 민족, 직장인이나 학생을 선호한다는 공지를 하고 하우스메이트를 구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상관없이 매너 있는 하우스메이트를 모집한다. 하우스 룰을 지키고 무리 없이 지낼 수 있는 예의가 중요하다. 나와 하우스메이트들 역시 서로 공동생활의 예의를 지키며 잘 살아가고 있다. 참고로 우리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우연히도 모두 회사의 위치가 같다는 것이다. 나중에 Full MCO 끝나면 다 같이 출근하게 될 수도 있겠다.
오늘 소개하려는 하우스메이트 린(가명)은 회사원인 동시에 가수이다.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특정 온라인 사이트에서 라이브도 한다. 코로나 시국이지만 온라인으로 공연하고 여러 가지로 꿈을 향해 노력하는 모습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꼈다. 안정적인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주식 및 재테크 공부로 점철된 삶이 아닌, 불확실하지만 그 불확실성을 즐기면서 매주 연습하고 노래하고, 그러면서 여유를 느끼며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삶. 그런 삶을 하우스메이트로서 만나게 되어 영광이다.
그녀를 보면 꿈에는 나이도 없고, 빠르고 늦음도 없고, 무조건 올인해야만 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강박이나 걱정 대신에, 정성스럽게 건강식을 요리해 먹고, 일주일에 4번씩 열정적으로 온라인 라이브에 참여하고, 주방에서 만나면 온화한 말투로 인사를 나누는 그녀를 볼 때마다, 예전에 한국에서 살 때는 어떤 완벽이나 안정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며 살아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부담은 사회에 의해, 또는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일지도 모른다. 한국에 살았을 때 빨리 성공해야 한다거나, 일과 돈, 집과 차, 결혼 등으로 특정되는 안정을 나이에 맞게 이루어야 한다는 무언의 사회적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지 않았던가. 이렇게 낙관적이고 느리게 꿈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을 본 적이 많았는지 스스로 자문해보게 되었다.
월, 목, 토, 일, 일주일에 네 번, 점심시간마다 린은 1~2시간씩 라이브를 하고, 저녁에는 종종 노래 연습을 한다. 그녀와 내 방은 복도와 거실을 끼고 있어서, 평소에 내 방에서는 노랫소리가 잘 들리지는 않는다. 린이 준 라이브 링크를 통해 점심시간에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응원의 실시간 댓글을 달아주는 팬들과, 우리 집에 사는 가수의 해맑은 미소가 보였다. 팬들과 말레이어, 인도네시아어(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는 특정 단어들과 억양은 다르지만, 서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함), 영어로 노래 사이사이에 소통하는 린의 얼굴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의 생동감이 느껴져서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힐링되는 밝은 에너지를 느끼며, 라이브가 끝날 때 나도 모르게 오랜만에 깊고 달콤한 낮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