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miely Mar 18. 2022

32. 드디어 한국행이 가능해졌다(feat. 두려움)

올해 1월 초의 이야기

2년 만이었다. 당시 1월 중순에 드디어 한국에 가게 되었다. 3개월간의 한국 생활의 시작. 오랫동안 타지 생활과 반복되는 락다운으로 지쳐가던 나는, 회사의 배려로 한국에 3개월간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친인척 경조사도 챙기지 못하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떨어져 있어야 했던 2년의 시간들. 사랑하는 자식 같던 한국 본가의 첫째 고양이가 하늘로 떠날  때까지도 나는 한국에 가지 못했다.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마음을 추스르고 드디어 한국행을 승인받아 비행기표를 끊은 1월. 2022년이라는 새해의 숫자도 내겐 새롭고 현실감 없고 때로는 버거웠지만,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생각보다 훨씬 버거운 선택이었다. 드디어 고향에 돌아간다고 마냥 설레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이런 모순적인 감정이 들다니. 한동안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드디어 한국 돌아가서 좋겠다고 하고, 한국 가족들 친구들은 어서 돌아오라며 재촉과 환영을 동시에 했다. 그 사이 간극에서 이도 저도 아닌 외줄 타기 하는 심정으로 서 있던 나. 사실 나는 두려웠다.


CNY(Chinese new year) 말레이시아 명절을 앞두고 탈바꿈된 쇼핑몰 


두려웠던 첫 번째 이유는 내적인 이유였다. 말레이시아에서 영어, 말레이어, 가끔 중국어를 사용하며 다문화 환경에 익숙해졌다. 다양한 옷을 입어도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길을 걸어 다니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완벽하지 않아도, 다르고 튀어도 말레이시아에서는 다름 자체가 당연하고 엄연한 진실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조금 튀면 좀 더 신경이 쓰이게 되어서일까, 두려움이 나도 모르게 올라왔다. 시간이 너무 흘러서 내가 한국의 가족, 친구, 사회의 기준에 맞지 않을까 봐 두려웠고, 이미 달라진 사고방식에 나를 깊이 이해해 줄 사람이 없을까 봐 두려웠다. 


또 다른 이유는 추위였다. 여름과 겨울 60도 정도의 온도차를 견디는 의지의 한국인 짤을 본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짧은 봄과 가을을 제외하면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가 40도 이상이며 체감온도는 50도 이상 나기도 한다. 부지런하게 옷을 넣어놓고, 꺼내고, 이불을 바꾸며 급변하는 온도에도 견뎌온 한국인으로서, 겨우 2년여 정도로 설마 체질이 바뀌었을까 싶었다. 제대로 한국에서 통으로 겨울을 났던 것은 2017년 겨울이 마지막이었다. 기나긴 시간을 겨울 없이 지냈던 내게 겨울 추위는 어느덧 두려운 대상이 되었다.



세 번째 이유는 신문물이었다. 내가 없는 새에 획기적인 신문물들이 소소하게 등장하여 적응이 어려운 건 아닐런지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십 년간 타국에서 해외생활했던 아는 언니가 나보다 몇 달 먼저 한국에 와서 도서관 카드 없이 모바일 앱으로 도서관 로그인 및 책 대여가 가능해진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해주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서도 큐알코드나 앱들이 엄청나게 잘 되어있는데도, IT강국 한국에 돌아간다는 것만으로도 괜히 별 걱정을 사서 하곤 했었다.


위와 같은 세 가지 요인에 나는 두려움과 버거움을 느꼈고, 출국일이 다가오는데도 썩 기쁘지만은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복잡한 마음을 안고 한여름에 파빌리온 쇼핑몰에서 두꺼운 겨울 롱 패딩을 샀다. 

이전 16화 29. 백신, 그 이후의 삶_’함께’의 가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