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신기한 그때 그 시절
당시 1월 중순은 아직 한국 입국 시 해외 입국자가 자가격리 10일을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출국 전에 PCR 테스트를 했고, 말레이시아에서 접종한 백신 이력도 출력했다. 코가 뚫리는 아픔을 오랜만에 느낀 나는 말레이시아의 강렬한 햇살 안에서 코를 부여잡았다. 클리닉에서 나와 부킷빈땅의 잘란 알로 거리를 지나가니 드디어 한국에 간다는 실감이 났다.
여권, 항공권(e-ticket), 백신 증빙서류, PCR 결과지, 인천공항에서 입을 겨울 패딩, 핫팩. 중요한 것들을 챙겼고, 여행을 다녀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족들 선물을 챙기다 보니 캐리어가 꽉 찼다.
‘진짜 한국에 가긴 가는구나.’
출국일은 일요일이었다. 로컬 친구가 공항까지 태워다 준 덕분에 가는 길이 외롭지 않았다. 쿠알라룸푸르의 KLIA는 한산했다. 한산해도 이렇게 한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 그대로 텅텅 비었다. 친구와 걸음을 함께하며 출국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가 싶었다. 생각보다 공항에 너무 일찍 온 탓도 있었다. 시간 계산을 잘못하여 무조건 일단 출발했던 우리는 출발시간보다 4시간 일찍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항 내 식당에서 여유롭게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하늘은 맑았다가 점점 어두워졌다. 사람들이 조금씩 늘었다. 두 명, 세 명. 출발 2시간 전이 되어서야 한국인 가족들을 몇몇 볼 수 있었다.
비행기 타기 전, 말레이시아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에게 연락이 왔다. 3개월 정도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데, 회사 동료들은 내가 혹시 안 돌아오는 것 아니냐고 했다. 락다운 기간 힘들었던 시간들과, 한국 가는 부담감 사이에서 한국에 간다는 기대감이 조금은 피어올랐다. 얼마 만에 가족과 친구들을 볼 수 있는 건지. 그간의 고민이 무색하게, 비행기에 타는 순간부터는 기대와 설렘이 몰려왔다. 아무리 언어가 통해도 타지는 타지였고, 현지 베스트 프렌드는 정말 좋지만 오랜 한국 친구들도 그리웠으니까.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내 발걸음은 보안 검색대를 지났다. 비행기가 보였다. 한국으로 향하는 직항. 이대로 내 발걸음을 따라가면 내일은 한국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