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2022년 재택근무를 이용해 한국에 오래 다녀온 뒤, 4월에 말레이시아로 복귀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5월 초부터 전원 오피스 근무를 선포했고, 2년간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보냈던 재택근무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졌다. 락다운이 끝났고 코로나 시국이 많이 나아졌으니 말레이시아 정부에서도 재택근무를 필수로 요구하지는 않았다.
사무실에 출근해야 한다는 점은 양가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주기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실내생활 때보다 운동량이 늘어나 심신건강에 좋으리라는 반가운 마음이 우선 들었다. 한편으로 씻고 옷을 갖춰 입는 출근 준비가 필요하고 출퇴근에 시간과 에너지가 들며 갑자기 많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점이 조금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실제로 출근해보니 체력은 2년간의 실내생활, 아니 침대생활의 기간만큼 많이 떨어져 있었다. 눈 떠서 세수하고 양치하고 노트북만 키면 되고 가끔 화상회의가 있을 때는 상의만 포멀한 옷으로 입으면 되었던 재택근무 때, 코로나 락다운으로 인해 외부 활동도 극히 제한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은 실내, 내 방에서 이루어졌었다. 그동안 마음도 몸도 근육도 많이 위축되었는지, 출퇴근을 위해 20분 정도 걷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말 그대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생존 근육만 남은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차를 타고 다니기엔 가까운 거리라 20분 정도 운동 겸 걸어서 출근하려 했던 나의 의지는 노트북 가방의 무게와 찌는 듯한 더운 날씨의 콤보에 속절없이 후들거리며 꺾여 버렸다. 3월에 코로나에 걸렸던 것도 한몫을 했던 것 같다. 코로나 음성 이후에도 회복이 잘 되지 않아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거기에 사무실 출근이라니. 말레이시아에 돌아오자마자 발이 푹푹 빠지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사무실 출근했다면 더 피로했을지도 모른다. 엄청난 인파와 함께 지하철에 끼여 출근해야 했을테니.
아침에 출근을 하는 것도 버거워서, 제대로 아침을 챙겨 먹을 수가 없었다. 건강식을 요리해야겠다는 자그마한 포부가 있었으나, 건강식은커녕 뭐라도 먹으면 다행인 지경이 되었다. 그나마 가끔 해 먹던 집밥의 빈도가 더 줄었다. 요리할 체력이 없어 배달음식을 밥 먹듯이 시켰다. 간신히 일어나 출근 후 아침이나 간식을 주문해 회사에서 먹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다 같이 시켜야 한다거나 눈치 볼 필요 없이 아무 때나 각자 배달시켜도 되는 분위기였다. 팬츄리나 식사 공간이 아닌 일하고 있는 본인 자리에서 맛있는 냄새를 솔솔 풍기며 식사를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배달음식을 시키기 일쑤였다. 직접 집에서 밥을 하고 아주 간단한 반찬들만 준비해도 한국에 비해 엄청나게 절약도 되고 배달음식보다 건강에도 괜찮았겠지만, 막상 오랜만에 출근을 하려니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고군분투 속에서도 좋은 점이 있다면 역시 사람과의 대화였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고립과 외로움이 지속되면 실제로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재택근무를 하느라 사람과 마주하고 대화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나는 사무실에만 가면 이층 저층에 울려 퍼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친한 회사 동료들과 함께 종종 수다 떨며 일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같이 식사하며 회사 이야기, 상사 이야기, 가족 이야기, 요즘 뉴스 등 온갖 주제로 대화하고, 웃고, 같이 여행을 계획하고, 만국 공통인 '오늘 점심/저녁 뭐 먹지'로 심도 깊은 토론을 하기도 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의 구김살이 점점 펴지는 것을 느끼는 나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