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가 아니었다니...!
5월 6일부터 지역적으로 더 CMCO, MCO가 차츰 강화되더니, 6월 1일부터는 말레이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Full MCO(Movement Control Order)가 발효되었다. 폭주하는 확진자 수를 줄이기 위해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는 지금 꼭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요즘 말레이시아의 엄청난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볼 때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번 MCO 4.0는 작년 MCO 1.0보다는 조금은 더 자유롭다. 조깅도 허용된다고 하니까.
말레이시아에 있으면서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로컬, 외국인 친구들과도 연락하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도 연락을 하는데, 한국에서 요즘 허용되는 것들이 있다 보니 갑자기 부쩍 한국에 가고 싶어 졌다. 여기서는 현재 주간 이동, 주 내부 구간 이동도 불가하다. 거주하는 주 내부에서 반경 10km 이내로만 돌아다닐 수 있고,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최대한 집 근처로 장 보러 나가는 정도만이 허용된다. 음식 배달이나 테이크아웃은 되지만, 식당이나 카페 내부에서 편하게 앉아서 취식이 불가하니, 집순이와 거리가 먼 나는 하루하루가 인고의 시간이다. 사바 주에서 가족 같은 사람들과 지낸 시간이 그립고, 수많은 갈 곳들, 섬 투어를 고대하며 하루하루 버티는 중이다.
버틴다, 는 것은 기약이 있을 때는 할 만한 고행이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추후 6월 14일에 신규 확진자 상황에 따라 MCO를 2주 혹은 1달 더 연장할 수도 있는 판국에, 기약을 바라는 건 사치가 되었다. 요즘에는 고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집순이 집돌이들에게는 집에서 재택근무하고 넷플릭스 보고 쉴 수 있는 것이 꿀 같은 행복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FULL MCO 직전에 이사한 나는 기존 친구들과 거리가 멀어져 콘도 근처에 만날 수 있는 친구도 없거니와, 코로나가 심각한데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위험하게 밖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여 반쯤은 감옥에 갇혀 있는 느낌으로 지내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의 반복되는 MCO 덕분에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 수 있었다. 나는 집순이가 아니고, 여러 가지 액티비티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힘을 얻는 사람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도 필수적인 사람이었다. 맛있는 음식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야 더 행복하고, 재미있는 영화도 누군가와 함께 볼 때 더 즐거운 거였다. 이렇게 나에 대해 알게 됨과 더불어, MCO의 좋은 점이라면 나 자신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의는 아니지만 나는 나의 온갖 날 것의 감정을 조용한 가운데서 느끼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특정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도 알게 되었으며, 때로는 외면하고 싶은 감정까지도 고스란히 체험해야 했다. 외부로 인한 신경 분산이 적은 상태에서. 혼자 일기 쓰고, 글 쓰고, 탐색하는 시간, 치유하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고통스럽지만, 나 자신의 고유한 느낌과 조금은 더 가까워지는 중이다. 자꾸 밖에서만 찾으려고 했던 그 어떤 것을 내면에서도 찾아보게 되었다. 나와 온전히 나로서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 MCO가 준 축복이었다. 아직은 서툴고 여전히 답답함과 외로움,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사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이지만, MCO 덕분에 확진자도 줄고, 사람의 소중함과 나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