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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마 Oct 15. 2020

클레어

나의 선생님

내 개인전 공간을 같이 봐주던 클레어. 이 날은 블랙 드레스이지만 네온 핑크 망사스타킹에 메뚜기 머리핀을 꽂고 오시기도 한다.



런던에서의 생활은 고립 그 자체였다. 석사와 달리 박사가 주는 심리적 중압감은 매우 컸다. 친구를 만난다거나 (친구도 없긴 했지만) 공부 외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다행히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해 몇 번의 치명적인 좌절의 순간을 제외하곤 그럭저럭 잘 버텼다. 우리 가족들은 쿨해서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는 주의였고, 일주일에 한두 번 안부를 묻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박사 생활 동안 한국어든, 영어든 나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은 단연코 지도교수 클레어다. 


클레어는 매우 박식했다. 연구와 관해 얘기를 할 때마다 새로운 주제, 처음 들어본 책, 작가, 아티스트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어느 책의 몇 페이지쯤인데 왼쪽 페이지였다는 것까지 기억해 냈다. 다른 연구 주제를 가진 박사생들과 얘기를 나눌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더 놀라운 것은 클레어의 시력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안경을 쓰지 않아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다른 학생이 클레어가 거의 반 실명이라고까지 말해서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기억한다는 거지? 나는 돋보기를 쓰는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곧 잊고 있었다.


패션 텍스타일 박사 연구실이 내가 들어온 지 2년 차 되는 해에 작은 공사가 진행되었고, 클레어의 방은 연구실 한편에 마련되었다. 밖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유리창이 크게 나 있었고, 클레어는 창문에 온갖 오브젝트를 매달아 놓고, 낡은 컴퓨터를 한 대 들여놨다. 어느 날 클레어가 저녁 늦게 방에 있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세상에나. 컴퓨터 스크린 앞에는 손바닥만 한 돋보기가 달려 있었고, 클레어가 그 돋보기를 통해 한 학기에 한 번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튜토리얼을 위해 내 논문을 읽는 것이 아닌가. 스크린의 크기는 10인치 남짓 되었는데, 돋보기를 통해 보이는 알파벳 한 글자가 한 뼘 크기는 되었다. 


돋보기에 거의 코를 박다시피 하며 글을 읽는 그녀의 모습을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저렇게 그동안 수많은 책과 학생들의 논문을 읽었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찔끔 났다. 클레어는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라 약간의 불편함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만약 저런 상황이었다면 공부를 시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공부를 마친다 해도 교수로서 계속해서 책을 읽고 지도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졌을까 싶다. 


클레어의 목소리는 봄바람에 살랑살랑 흩날리는 여리지만 힘차게 자라나는 들꽃처럼 언제나 밝았다. 그런 목소리로 클레어는 항상 이걸 해보는 건 어때? 그 사람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게 어때? 하면서 새로운 연구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그중 내게 가장 큰 도전을 제시해 준 건 필름 제작이었다. 뒤에 가서 내 박사 연구에 대해서 설명하겠지만, 패션과 소리에 대한 연구 주제를 가지고 입학했음에도 불구하고 패션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갇혀 적절한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매던 초반이었다. 클레어는 내 작업을 보고 "음, 이 작품을 입으면서 영상을 만들어 보는 게 어때?"라고 크리스마스 연휴 2주 전 즈음 설레는 목소리로 유리알처럼 파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지금이야 영상을 찍는다는 게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아는 패션 필름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이거나 또는 패션 필름 디렉터 Nick Knight 가 있는 정도였다. 영상작업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막막함이 몰려왔지만, 의상이 착용자의 신체와 만났을 때 생겨나는 어떠한 정동(affect)을 패션의 전경이 형성되는 과정으로서 표현하기 위해서는 영상이 최적의 표현 매체이긴 했다. 그래서 일단 해 보기로 결심했다. 크리스마스 연휴 때 의상을 완성한 후, 1월 초에 학교 촬영 스튜디오를 예약하여 친구에게 촬영을 부탁했다. 나는 내가 만든 의상을 입고 걷고, 의자에 앉고, 의상에 눌려 자국이 난 피부를 들췄다. 이것저것 찍은 원본을 가지고 2주간 편집하여 결국 약 3분여의 영상을 만들었다. 지금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별로다. 하지만 이걸 계기로 나는 또 다른 영상 작품을 세 편을 제작하였고, 그중 한 작품은 2017년에 이태리 피렌체 비엔날레에서 비디오 아트 부분 2등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클레어 덕분에 또 다른 매체를 통한 표현과 작업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교수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클레어처럼 가르치는 사람이 된 나는 그녀를 종종 떠올린다. 과거의 클레어가 나에게 도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듯이,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에게도 그런 길을 인도하고 싶다. 그럴 땐 나도 클레어만큼 신나는 목소리로 학생에게 이것저것 해 보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예전의 나처럼 막막해하고, 때로는 나를 원망하기도 할 것이다. 클레어처럼 나도 잘하고 있는 것일까 자문하면 아직 자신이 없다.


클레어에게 한 달 전쯤 메일을 보냈다. 가보지 않은 길을 도전하게 해 줘서 감사하고, 그때가 그립다고 썼다. 며칠 후 클레어는 그때 우리 연구실 분위기 참 좋았었는데 하면서, 근래에 읽은 책들이 너무 좋다며 학회지 북리뷰 아티클을 써도 될 만큼의 장문의 답장을 보내왔다.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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