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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마 Oct 15. 2020

누구나 구름 속에서 공그르기 하는 시간을 겪는다

Jin Joo Ma: Dress with the Sound of Its Own Making, (2014)_ 4미터가 넘는 헴라인을 공그르기로 마무리했다. 



공그르기는 치맛단이나 소맷단을 접어 올려 마무리할 때 하는 손 바느질 방법이다. 겉면에서 바느질 자국이 보이지 않도록 원단 표면의 한 두 올만 집어야 해서 까다롭다. 그래서 학생들이 기초 손바느질 방법을 배울 때 가장 어려워한다. "이거 봐, 겉에서 실이 보이잖아~."라고 하면, "아! 공그르기가 제일 싫어요 교수님."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원단에 코를 박고 심각한 표정으로 바늘로 올을 집어 들어 올리려는 학생들의 모습은 정말 귀엽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며 나가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귀엽다고 해야 할지, 담배생각이 나게 해 미안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패션 텍스타일 박사 연구실은 매주 수요일 오후 그룹 세미나를 열었다. 지도교수님들과 박사생들이 모여 돌아가면서 자기 연구에 대해서 얘기하거나 특정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기도 했다. 박사 1년 차 어느 날의 토론 주제는 '박사과정을 한다는 것은"이란 주제였다. 박사과정이 어떤 경험인지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돌이켜 보면, 박사과정에 겪는 경험들을 지적으로 접근하면서 동시에 또 어렵다고 징징대고,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위로하며 끝냈던 것 같다. 


당시 내 연구의 진척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진척이 아니라 이 연구 주제를 뒤집어 말아를 오가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박사과정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해보자라고 판이 벌어지니 나는 한숨부터 나왔다. 오랜 시간 지났지만 당시의 내 기분은 생생하다. 말하기도 싫은 기분이었다. 난 한국말로도 구구절절이 내 얘기를 하는 성향도 아닌데.. 흠, 지금 이 상황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생각해 봤다. 그러다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아니, 내 머리 위에 말풍선이 생기더니 그 말풍선 안에 희뿌연 안개가 가득 찼다.


당시 나의 박사 생활은 매우 규칙적이었다. 평일엔 아침에 7시에서 8시 사이에 일어나 씻고, 학교 가고, 커피 마시고, 공부하고, 점심 먹고, 집에 와서 저녁 먹으며 한국 TV 보고, 장 보거나 요가하고 씻고 자는 게 다였다. 학교를 매일 가지 않아도 됐지만 나는 이 생활을 고수했다. 어차피 어디 갈 데도 없었다. 정말 학교 가기 싫은 날엔 카페에 가서 공부했다. 이렇게 규칙적으로 매일매일 무언가를 읽고 찾아보고 쓰고 하는데 당최 이게 맞는 방향인지 알 길이 없었다. 연구 초반이니 당연한 과정이었는데, 당시에는 그걸 몰랐다. 내가 하는 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도 모를뿐더러, 박사 생활을 20년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는 끝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더불어, 연구실에 박사 8년 차가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두려움은 날로 증폭되었다. 


나는 구름 속에 있었다. 이 구름이 얼마나 큰 구름인지, 언제 걷힐는지 알 길이 없는 구름 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구름을 탈출하기 위해 구름 속을 질주해도 모자랄 판에, 나는 구름 안에서 공그르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렷이 보여도 한 올 한 올 집어 올리려면 집중해야 하는데 구름 속에서 공그르기라니 끔찍하다. 심지어 공그르기를 해야 할 원단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공그르기를 해야 한다면? 손바느질을 좋아하는 나조차도 그건 고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박사과정은 구름 속에서 핸드 스티칭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디가 끝인지, 잘하고 있는 건지 안 보인다고 덧붙였다. 지적으로 포장하고 싶어도 더 이상 설명할 수 없었다. 어느 교수님이 좋은 표현이라고 말했다. 표현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정말 제가 그랬거든요.. 


구름 속에서 하는 공그르기는 몇 년 더 계속되었고, 나는 공그르기 하면서 바늘에 찔리고, 피도 나고, 실을 다시 풀기도 했다. 그러다 고문과도 같았던 공그르기 할 원단도 끝이 났고, 결국 구름에서도 탈출했다.

 

 누구나 살면서 구름 속에서 공그르기 하는 시간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 번 겪었고, 또 공그르기를 해야 할 시기가 몇 번이고 다시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반복하는 일은 몸과 정신이 기억하고, 암묵적 지식이든 머슬 메모리던 간에 전만큼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잘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다음번 공그르기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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