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호수공원에서 본 따뜻하고도 의심스러운 장면
하루가 단비처럼 내린다. 밖을 나서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풍경들이 사연처럼 다가오고, 걷다 보면 보이는 것들을 흘려보낼 수 없는 순간이 이야기가 된다.
집에서 나와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차도가 나온다. 차도 건너편으로는 호수공원이 펼쳐진다. 차도를 건널 때 신호등 기둥에 붙은 버튼을 누르면, 남자의 거친 목소리로 "Wait"이라는 안내음이 울린다. 누르자마자 파란 불이 켜진다. 4차선 도로에 제법 통행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행자를 먼저 배려하는 문화가 느껴진다.
공원 입구와 마주한 곳에는 주차장이 있다. 차량만큼이나 사람들이 공원을 걷고 있다. 오후의 어정쩡한 시간대라 그런지 주차장은 한산한 편이다.
아내와 함께 숲길을 지나 호수공원을 두 바퀴 돌고 다시 숲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우리의 산책 루틴이다. 전체 거리 7.8km, 13,000보, 1시간 45분 정도. 하루 운동량으로 손색없다.
숲길을 걸을 때는 무성한 나무들에 시야가 가려진다. 그 덕에 더 운치 있는 길을 걸을 수 있다. 태동하는 자연 속을 걷는 일은 걸을 때마다 늘 새롭다. 반면 호수공원 길에서는 시야가 탁 트여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는 재미가 있다. 다양한 언어, 피부색, 표정들. 이곳이 캐나다임을 느끼다가도 문득 이국의 어딘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오늘은 호수 산책길에서 앞서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이 시선을 끌었다. 서로의 어깨와 허리 부분을 팔로 두른 채 천천히 걷고 있었다. 나이는 대략 70대 이상쯤. 하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우리 부부는 거리를 두고 걸으며, 결혼 전 데이트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땐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시선도 발걸음도 하나였다.
예전에도 이 공원에서 손을 꼭 잡고 걷는 노부부를 보고 감탄하며 글로 남긴 적이 있었다. 그때는 “늙어서도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라고 느꼈다. 그런데 오늘의 두 사람은 손도 팔도 아닌, 마치 서로를 감싸 안듯이 걷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부부가 아니라 사별 후 친구로 지내는 사이? 혹은 애인? 물론 불륜은 아닐 것이다. 나이 들어 그런 관계는 위로이자 삶의 동반자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젊은 시절엔 중년 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 걸 보며 “불륜 아닐까?” 하고 농담하곤 했다. 카페에서도 마주 앉지 않고 나란히 앉는 모습만으로도 말이 오갔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아무 근거 없이 지나간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각자의 해석이 곧 진실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 앞서 걷는 그 두 사람을 보며 오히려 부러운 마음이 든다. 그 나이에, 서로를 자연스럽게 감싸 안고 걷는 모습. 부부가 아니라 해도,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관계인가.
요즘은 늙어가는 속도가 빨라 보인다. 초침이 분침을 살짝 밀어내듯, 세월도 그렇게 조용히 우리를 밀어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예전엔 늙은 이들의 행동에 “늙어가지고…”라는 말을 쉽게 내뱉은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얼마나 무례하고 무지했는지 알겠다. 세월은 그 말마저 조용히 덮고 지나갔다.
그날 만난 두 분은 정말 부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가 본 건, 규정할 필요 없는 ‘좋은 그림’이었다. 누군가를 팔로 감싸 안고 함께 걷는 그 뒷모습은, 사람 냄새나고, 인생의 온기가 배어 있는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