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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I'm sorry"에 담긴 문화적 습관

낯선 예의, 낯선 사과가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by 김종섭

겸손은 때때로 위선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낯선 문화에서는 특히 그렇다.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일상 속에서 너무 쉽게 오가는 “I’m sorry”라는 말에 혼란을 느꼈다. 마치 ‘옷깃만 스쳐도 오천 번의 인연’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할 만큼, 작은 접촉에도 사과가 먼저 나오는 이 문화는 내게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일상 곳곳에서 들려오는 “I’m sorry”라는 말과 행동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뭐가 그리도 잘못되었다는 걸까. 매장에서 물건을 구경하고 있으면, 누군가 내 앞으로 지나가며 “I’m sorry”라고 말한다. 처음엔 그것이 예의라기보다는 습관처럼 느껴져, 오히려 짜증을 유발했다. 진심 없는 말, 가식처럼 들렸다. 마치 화가 나 있지만 억지로 웃는 표정을 관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과대해석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점점 모든 행동에 의심을 품게 되었고, 사람들의 말과 표정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다.

“Thank you” 또한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감정 없이, 때론 자동적으로 나오는 말. 예의라기보다는 반사적인 표현에 가까웠고, 그저 입에 밴 말버릇 같았다.

그렇다면 많은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Thank you”와 “I’m sorry”는 무의식일까, 아니면 진심일까?

처음엔 이 낯선 미안하다는 말투가 어색하고 불편했다. 진심 없는 말처럼 느껴져 적응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I’m sorry”라고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 말은 마치 이방인의 티를 벗기 위한 전초전 같았다.

누군가와 어깨를 스쳤을 때, 좁은 길에서 비켜줄 때, 줄에서 실수로 앞사람의 발을 밟았을 때, 그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문화였고 습관이었다. 그리고 그 문화는 어느새 내게도 스며들고 있었다.

사실, 이곳에서 사과는 꼭 잘못했을 때만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종종 잘못이 없더라도, 상황을 부드럽게 넘기기 위해 “I’m sorry”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문화,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을 살짝 낮추는 일종의 배려인 셈이다. 하지만 그 사과가 진정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일 때면, 역시 어딘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오랜 문화에서 비롯된 습관은 결국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자리 잡는다. 문제는, 이 무의식이 이방인에게는 하나의 기준처럼 작용한다는 점이다. 사소한 스침에도 “I’m sorry”가 따라붙는 사회에서, 아무 말 없이 지나치는 외국인을 보며 어느새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무례하지?’라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이토록 피부에 와닿는 것도. 그 법이 낯설든 익숙하든, 혹은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그곳의 문화를 따르는 것이 결국 이방인으로서 빠르게 적응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어깨가 스쳤을 때, 문 앞에서 마주쳤을 때, 혹은 눈치 없이 먼저 나서려 했을 때 고민 없이 “I’m sorry”가 튀어나온다. 심지어 한국에 있는 지인을 만났을 때도 작은 실수에 “I’m sorry”라고 말하곤 한다. 그때마다 지인은 빤히 나를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 정도로 미안해할 일인가?’ 하는 눈빛이 분명했다.

사과는 인정에서 비롯된 좋은 태도지만, 지나치면 진심이 가벼워지고, 때로는 독이 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상대가 원치 않으면 계속 권하는 것이 결국 불쾌함이 되듯, 지나친 사과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나는 모든 것을 인정하며, 낯선 곳에서의 행동을 차츰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마주하는 말투, 태도, 시선을 통해, 그것이 진심이든 습관이든 서로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았다.

그 밖에도 공공장소에서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뒷사람을 위해 문을 붙잡아 주는 모습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제는 나도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따라 하고 있다. 차도에서도 마찬가지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으면 차들이 멈춘다. 나는 손짓으로 ‘먼저 가세요’ 신호를 보내지만, 차는 요지부동이다. 결국, 이곳은 사람이 먼저 지나가야 하는 문화라는 것을 배웠다.

이 모든 것이 사소한 배려처럼 사회 전반에 정착되어 있다. 마치 밥을 먹을 때 손이 아닌 포크나 수저를 사용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평범하고 일상적인 무의식의 문화. 그 속에서 나도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그리고 익숙해지는 만큼, 그 문화의 깊이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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