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서 마주한 점심 풍경, 그리고 마음의 변화
캐나다로 이주한 뒤, 나는 다시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낯선 땅에서의 점심시간은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푸른 잔디밭 위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햇살을 받으며 점심을 먹는 모습은 얼핏 보면 한국의 소풍 장면을 떠올리게 했지만, 그 속은 사뭇 달랐다.
도시락을 꺼내 들고 앉아 먹으면서 따뜻한 햇살조차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멀게만 들리고, 도시락 속 반찬 하나하나가 고향의 그리움을 되새기게 했다.
출근을 하게 되면서 도시락은 자연스러운 선택이 되었다. 한국에선 대부분 구내식당이나 주변 식당을 이용하기에, 도시락은 특별한 상황이거나 아주 가까운 관계 안에서나 등장하던 풍경이었다. 게다가 한국 직장 문화에선 식사 비용을 회사가 부담하는 것이 일종의 원칙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곳 캐나다에서 도시락을 다시 싸게 된 것은, 학생 시절 이후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 시절엔 도시락 반찬만으로도 집안 형편이 드러났고, 괜히 도시락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캐나다에 와서 처음 시작한 일은 가드닝이었다. 이민자의 첫 직업답게, 몸을 쓰는 일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작업 현장 어디서든 자리를 잡고 식사를 했다. 잔디를 깎는 날엔 잔디밭 위에, 조경을 하는 날엔 화단 가장자리에, 때로는 도로 옆에서 매연과 소음을 견디며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었다.
사장님은 “소풍 나온 기분으로 즐겨요”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거리 한켠에 쪼그려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내가 이렇게까지 살려고 이 먼 곳까지 왔나” 하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이민 후 처음 느껴본 후회의 감정이었다.
게다가 점심시간이 고작 30분이고, 그마저도 ‘근무 시간’이 아닌 ‘개인 시간’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은 낯설고 실망스러웠다. 이 문화는 내가 살아왔던 삶의 정서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하지만 현지인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 하나 불평하거나 문제 삼지 않았고, 그저 오래전부터 익숙한 일상의 일부일 뿐이었다.
우리에게 그동안의 도시락은 그저 끼니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풍경이자 추억이며, 기다림의 상징이다. 운동장 한켠에서, 소풍 장소에서 도시락을 꺼내 들던 순간은 맛과 정서를 넘어서는 기억이었다.
하지만 이곳 캐나다에서 도시락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길거리, 남의 집 마당, 더운 햇살, 먼지, 소음 속에서 도시락을 먹는다는 건 한국인의 정서로는 결코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문득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 낯설고 불편한 점심 풍경은 처음엔 절망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해졌고, 마침내 받아들이게 되었다. 결국 중요한 건 ‘이해’보다는 ‘인정’이었다. 그게 빠른 적응의 길이었다.
이제는 도시락 가방을 옆에 두고, 바닥에 앉아 점심을 먹는 이들의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고, 동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일상의 일부가 되었을 뿐이다.
다만, 도시락 반찬은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여러 인종이 함께 일하는 캐나다에선 냄새가 강한 음식, 특히 김치는 민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빵과 음료로 식사를 대신 싸가기도 했다.
한국에서 회사 구내식당을 두고도 외식 메뉴를 고르며 고민하던 기억이 남아 있는 내게, 이곳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일은 쉽지 않은 적응이었다.
요즘은 도시락을 싸서 나갈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일까.
문득, 도시락을 들고 다니던 그날들이 그리워진다.
도시락 속에 담긴 시간, 냄새, 풍경, 그리고 그 시절의 감정들까지,
모두가 아련한 기억이 되어 가슴 한켠을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