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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낯선 미소와 마주한 날

진심과 습관 사이, 나는 미소 앞에 멈춰 섰다.

by 김종섭

캐나다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낯설게 느껴졌던 건 사람들과 마주쳤을 때의 ‘미소’였다. 처음 만난 사람의 미소,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의 미소, 길에서 스쳐 가는 이들까지도 모두 어색함 없이 눈웃음을 지었다. 내 눈에는 모든 미소가 부담스러웠다.


한국에서는 옆집 사람과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도 무표정이 기본이다. 오히려 먼저 미소를 건네는 사람이 부담스럽고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였을까. 처음 캐나다에서 마주한 그들의 미소는 오히려 부담스럽고 경계심부터 들었다.


미소만이 아니었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은 얼굴을 보자마자 “Hi.” 짧은 인사 한마디마까지 미소와 함께 건네왔다. 나는 어떻게 화답할지 몰라 시선을 살짝 딴 곳을 향했다. 마치 죄짓은 사람 같은 모습처럼 자연스럽지 않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다정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면, 문득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무슨 의도가 있어서 저렇게 친절하게 미소를 건네는 걸까?’
맞다. 한국에서는 그런 낯선 미소에 의심이 앞섰다. 종종 그 미소는 실제로 목적이 있었고, 그래서 더 부담스러웠다. 미소가 단순한 인사의 표현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유 없는, 모르는 사람의 미소는 그래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불편하게 다가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캐나다에 와서도 상대의 미소가 진심보다도 내 불편함에만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친절한 미소를 외면했던 내 얼굴은 과연 어떤 표정이었을까. 그래고 외면할 때 상대의 표정은 어땠을까, 상대의 표정과는 상관없이 내 감정만 지키는 데만 몰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이 진심이든, 가식이든 상관없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억지로 흉내 낸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냥 생존의 방식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 습관이었고, 나는 어느새 그 습관에 면역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 웃음이 언제나 자연스러운 건 아니었다. 얼굴 근육은 움직였지만, 표정은 마음보다 느렸고, 진심은 늘 한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그래도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들과 미소를 주고받는 일이 더는 낯설지 않게 되었을 무렵, 나는 비로소 이 낯선 곳에서 마주한 작은 변화의 징후를 실감했다.


그렇게 조금씩 나는 변화에 익숙해져 갔다. 캐나다에서의 미소는 누군가를 감동시키거나 특별한 예의를 차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배려처럼, 인사처럼, 어떤 약속처럼 자리 잡은 감정의 기본값이었다. 억지로 짓는 웃음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감정의 언어였다.


캐나다 생활에 익숙해진 나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자연스럽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지하철에서,엘리베이터에서, 길을 걷다 눈이 마주친 누군가에게도 미소를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따뜻한 미소가 아니었다. 당황한 표정, 경계하는 시선, 그리고 때때로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는 눈빛이었다.그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 여기는 한국이지’라는 것을 순간 잊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의 기본값은 ‘무표정’이었다. 감정은 쉽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고, 미소는 관계가 쌓인 뒤에야 조심스럽게 허락되는 정서라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그리고 나는 내 안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또 다른 ‘표정의 문화’를 인식하게 되었다.


사회가 다르면, 그 사회가 받아들이는 감정의 코드도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한국어를 써야 할 곳에서 영어로 말하고 있었던 느낌이다. 감정의 언어 역시도 문화에 따라 설명. 이해라는 통역이 필요했다.


나는 웃고 있을 때, 진심에서 우러난 걸까? 아니면 그 사회가 요구하는 매너를 따라 하고만 있는 것일까? 솔직히 웃고는 있었지만 진심보다는 캐나다 문화를 따라 걷는 웃음에 지나지 않았다. 미소가 ‘속삭임’이라면, 웃음은 ‘외침’이다. 웃음보다는 미소처럼 다가서는 연습이 아직 부족한 듯하다. 나는 속삭이듯 미소 지으려 했지만, 때로는 큰 웃음이 필요할 때도 있기는 했다. 또 어떤 때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는 것이 가장 내게 편하고 안전할 때가 있었다.


한국의 어느 산에서도, 오르는 길에 마주친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수고하십니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짧지만 힘이 되는 말들, 그리고 거기에 얹힌 따뜻한 미소가 보기 좋았고 늘 이런 행동과 따뜻한 언어가 오고 가길 원했었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도 한때 ‘스마일 캠페인’이 한창이던 시절이 있었다.웃음이란, 사실 마음이 편해야 가식이라도 나올 수 있는 법이다.

그 시절엔 먹고살기 바빠 웃음조차 사치처럼 여겨졌고, 그래서 정부가 앞장서 국민에게 웃음을 찾아주겠다는 캠페인을 벌였던 것이다. 관공서나 백화점 등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공공장소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가슴에 웃는 얼굴 배지를 달고, 의식적으로 미소를 건네는 운동이 전개됐다.

사회는 분명 ‘미소 짓는 얼굴’을 원했다. 하지만 정작 그것이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는 못했다. 억지로 지은 웃음은 어색했고, 때로는 오히려 부담이 되던 시절이 떠오른다


강요된 미소는 쓴웃음이 되고, 습관 되지 않으면 자연스럽지 않아 마치 위선처럼 보인다. 사실 처음 캐나다에 와서 그들의 웃음은 마치 기계 동작처럼 영혼이 없어 보였다.

가식 같았던 그 미소가, 어쩌면 더 진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그들의 미소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들의 미소가 낯설지 않다고 생각이 들 때, 그때 일상의 웃음을 나도 닮아가려 노력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가식적인 웃음도 재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처음대로 웃음을 멈춰고 괜한 상대를 경계 하는 원래의 습관으로 돌아가곤 한다.


나는 오늘도 다시 한번, 그 낯선 미소 앞에 조용히 멈춰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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