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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방 안에 《우리 영화》와 함께한 7월의 여름

죽음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주말 드라마

by 김종섭

2025년 7월, 캐나다의 여름은 한국보다 짧고 무더위도 길지 않지만, 이번 여름은 유난히 무덥다. 단지 기온 때문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던 한 편의 한국 드라마 때문이다.


《우리 영화》는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SBS에서 12회에 걸쳐 방영된 금토 드라마다. 7월 초순, 아내와 함께 재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아내는 원래 한국 드라마 열혈 시청자이다. 나는 예전에 몇 편의 한국 영화가 캐나다 극장에서 상영됐을 때 본 것이 전부였다. 그동안 멀리했던 한국 드라마를, 올여름엔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우리 영화》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배우 지망생 '이다음'과, 그녀의 마지막 삶을 기록하려는 다큐멘터리 감독 '이제하'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영화 《하얀 사랑》을 함께 만들며 서로의 삶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죽음을 마주한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기록과 사랑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드라마는 삶의 의미를 조용히 되묻는다.

이다음(전여빈)과 이제하(남궁민). 죽음 앞에서도 삶을 함께 기록한다. 사진 제공: SBS

어느 날, 평일 낮 아내와 함께 이미 방송이 끝난 6월 재방송분을 몰아보았다. 이후 7월 방송분은 금·토 2회분을 묶어 일요일 오후마다 챙겨보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일요일을 기다리는 설렘이 생겨났다. 오전엔 집 앞 산책을 하고, 오후엔 방 안을 작은 영화관으로 꾸몄다. 커튼을 치고, 조명을 낮추고, 조용히 감정의 스위치를 눌렀다.


나는 비빔밥 같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순서와 격식 없이 모든 재료가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이야기는 인간적인 맛이 있다. 《우리 영화》는 그런 드라마였다. 무더위, 외로움, 죽음, 언어, 사랑, 그 모든 감정이 한데 어우러져 한 그릇에 소박하게 담겨 있었다.


극 중의 '이다음'은 묻어 있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소풍 가듯 하루를 즐겁고 긍정적으로 살아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그녀를 지켜보며 나는 매주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여름의 무더위조차 그녀의 하루에 비하면 사치였다. 그녀의 눈빛엔 ‘살고 싶다’는 절절한 목소리가 담겨 있었고, 그 눈빛은 캐나다 방 안에도 가득 찬 듯했다.


드라마가 끝나기 전까지 나는 간절히 바랐다. 극 중에서라도 그녀가 살아주기를. 마지막 한 장면만큼은 반전이 오기를 바랐다. 이건 팩션 드라마이고 이미 흐름이 정해져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극 중 상황이 바뀌길 원했다. 그래도 그녀가 오늘을 살았다면, 내일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적을 바랐다.


하지만 예상대로, 그녀는 떠났다. 조용히, 그리고 아름답게. 7월 셋째 주 일요일 밤, 여름의 끝처럼 그렇게 드라마도 끝나버렸다.


나는 많이 슬플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았다. 그녀는 떠났지만 ‘이다음’이라는 이름은 남았기 때문이다. 그건 단지 극 중의 인물이 아니라, 하루를 살아내는 태도에 감동을 준 이름으로 내 안에 남겨졌다.


드라마가 끝난 지금, 나는 다시 여름날 오후로 돌아와 있다.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했던 대사들, 슬픈 음악조차 따뜻했던 장면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함께 살아낸 시간들이 필름을 되감듯 되살아난다.


이국의 방 안에서, 나는 한국 드라마로 7월을 살아냈다. 죽음을 말했지만 결국은 ‘오늘’을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드라마였다.


《우리 영화》는 내게 눈물, 사랑, 햇살, 절망, 그리고 희망이 함께 어우러진 한 그릇의 여름날 비빔밥이었다. 그리고 올여름, 나는 뜨겁게 그녀의 오늘을 응원했다.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은 우리를 종종 움츠리게 하지만, 그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타인의 하루까지도 바꾼다. 《우리 영화》 속 시한부 이다음은 내 여름의 풍경을 평소와 다르게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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