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의 눈에 비친 아내의 손길과 작은 사랑
60대가 되니, 예전엔 놓치고 살았던 가족의 손길들이 새삼 깊게 다가온다. 며느리를 위해 뜨개질바늘을 드는 아내의 모습에서도 그런 마음을 느꼈다.
아내는 어느 날 베이지색 실타래 하나를 사 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앉아 뜨개질을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 받침대나 덮개 같은 걸 뜨는 줄로만 알았다.
아내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모양은 점점 바가지처럼 변해갔다. 그러더니 어느새 벙거지 모자의 형태를 갖췄다. 거의 완성되었을 무렵 아내는 모자를 직접 써보더니 아무 말 없이 실을 풀기 시작했다.
“작은 며느리에게 선물하려고 했는데 작을 것 같아요.”
아내는 머리 둘레를 대충 짐작해 넉넉하게 떴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써보니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실을 다시 푸는 아내의 손길에서 정성과 진심이 조용히 전해졌다.
다시 시작한 뜨개질은 처음보다 훨씬 넓고 여유로운 모자로 모양을 잡아갔다. 챙을 뜨던 중 아내가 내게 물었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조금 더 넓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 말에 아내는 몇 줄을 더 떠 챙을 넓혔다. 그 무렵 작은아들 부부가 집에 도착했고 아내는 마무리를 이어갔다. 십 분쯤 지나 모자가 완성됐고, 아내는 며느리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
모자를 쓴 며느리는 환하게 웃었다. 꼭 맞는 건 아니었지만 불편해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아내는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 모자는 내가 쓰고 안젤라 모자는 다시 떠줄게.”
그날 이후 아내는 남은 실타래를 꺼내 다시 모자를 뜨기 시작했다. 조용한 손길은 또 하나의 벙거지 모자로 이어졌고, 드디어 어제 모자가 새롭게 완성됐다. 이번에는 며느리의 머리에 꼭 맞는 선물이 되었다.
작은 며느리는 손으로 만든 것을 좋아한다. 몇 달 전 아내가 만든 치마를 선물했을 때도 무척 기뻐했다. 그때도 허리둘레가 조금 작아 두 번이나 수선한 끝에 완성됐던 기억이 있다.
사실 치수를 미리 물어보면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내는 언제나 깜짝 선물을 고집했다. 시행착오가 따르더라도 그 안에는 시어머니의 진심이 담겨 있다.
“큰 며느리 것도 하나 떠서 선물하면 어때?”
“혹시 불편해할 수도 있잖아요. 취향을 잘 몰라서요.”
아내는 큰 며느리의 취향을 알아갈 만큼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캐나다에 살고 큰아들 부부는 한국에 있다. 결혼한 지 이제 1년을 조금 넘긴 상태라 자주 만나지 못했다. 함께한 시간이 적다 보니 아직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다.
작은아들이 아내에게 며느리의 성향을 귀띔해 줬다.
“우리 안젤라는 손으로 만든 걸 정말 좋아해요.”
그 말 한마디에, 아내는 다시 며느리를 위해 뜨개바늘을 들었다.
예전엔 “사위 사랑은 장모님,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구분보다 가족을 향한 마음 자체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득 장모님 생각이 났다. 벌써 떠나신 지 2년이 흘렀다. 돌아보면 장모님은 언제나 사위인 나를 따뜻하게 챙겨주셨다. 아내가 실타래를 들고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장모님의 손길이 떠올랐다.
요즘 부모는 말없이 조용히 주는 사랑에 익숙하다. 아내의 뜨개질도 그런 사랑의 연장선에 있다. 실 한 올 한 올에 작은 며느리를 향한 마음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