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출근

매일 아침, 도서관으로 향하는 나만의 루틴이 있습니다

by 김종섭

아침마다 반겨줄 사람이 없어도, 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따뜻해진다. 나는 매일 아침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걸어서 15분 남짓, 운동 삼아 걷기에도 딱 좋은 거리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풍경이 펼쳐진다. 작업복 차림으로 바쁘게 걷는 이들, 여유롭게 산책하듯 걷는 사람들, 버스를 기다리는 이들, 줄지어 달리는 자동차 행렬까지. 익숙한 아침의 모습 속에서 문득 숨 가쁘게 지나온 시간들이 떠오른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 시절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짧은 거리지만, 걸으며 많은 생각들이 오간다.


지금 이 길은 누군가에겐 멈춰진 길일 수도 있다. 오늘처럼 이 길을 걷지 않았다면, 어디쯤에 멈춰 서 있었을까, 거실에 비추어진 햇살이 전부인 아침이었을지도 모른다. 여름 아침 햇살은 뜨겁지만, 가로수 그늘 아래에는 밤새 눌러앉은 냉기가 여운처럼 남아 있다. 언제부턴가 내 발끝에는 가벼운 마음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가 온전히 내 것이기 때문이다.


매일 같은 방향으로 걷지만, 때때로 루틴이 바뀌면 길도 달라진다. 어떤 날은 맥도널드에 잠시 앉아 아침 커피 한 잔을 마시기도 하고 때론 테이크아웃해 손에 쥐고 걷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쇼핑몰 복도를 가로질러 도서관으로 향하며 스쳐 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눈으로 훑고, 아이쇼핑을 즐기기도 한다. 예전처럼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삶, 그 여유가 참 좋은 아침 출발이다.


도서관이 있는 레크리에이션 센터에는 수영장, 헬스장, 탁구장, 다목적 교실, 실내체육관까지 다양한 시설이 함께 있다.낮 시간대에는 주로 은퇴한 이들이 이 공간을 채운다. 말을 나눈 적은 거의 없지만, 자주 마주치는 얼굴들이 있다. 그들도 어쩌면 나처럼, 자신만의 루틴 속에서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올해 초에는 수영이나 헬스를 시작해보려 했지만, 뜻하지 않게 팔을 다치는 바람에 계획을 미뤄야 했다. 덕분에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내 일상의 중심이 되었다.


처음 이 도서관에 들어섰을 때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내게 도서관은 늘 ‘정숙’의 상징이었다. 서울 남산도서관, 용산도서관, 도심 곳곳의 크고 작은 도서관들. 그 시절 도서관엔 ‘정숙’이라는 팻말이 벽마다 붙어 있었고, 기침조차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곳 캐나다의 도서관은 전혀 달랐다. 이곳 사람들은 도서관에서도 자연스럽게 큰 소리로 대화하거나 통화를 한다. 심지어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음식물을 들고 들어와 냄새를 풍기며 먹는 이들도 있다. 마치 야외 소풍에 온 듯, 자유롭고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 도서관을 이용한다.


처음엔 낯설고, 시끄럽고, 많이 불쾌하기도 하여 적응이 되질 않았다. 옆자리 사람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정중히 부탁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이내 ‘내가 이상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이곳의 도서관 문화가 한국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이제는 그 풍경조차 익숙해졌다. 조용하지 않아도 괜찮은 도서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공간. 그것이 이곳의 또 다른 ‘정숙’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주로 2층 창가 쪽의 개인용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는 그 자리에서 글을 쓰고, 뉴스를 검색하고, 책을 읽는다. 때로는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기도 한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묘한 에너지를 얻어가기도 한다.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마치 젊은 사람들 사이에 나도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말은 없지만, 책과 노트북 사이로 흐르는 공기는 따뜻하다. 국적이 다르고 세대가 달라도, 이 공간에서는 그 다름조차 하나의 조화로 느껴진다.


북적이고 시끄러운 카페에서 더 집중이 잘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런 풍경이 익숙하다. 이제 나에게 이 도서관이, 조용함을 강요하지 않는 새로운 의미의 카페처럼 느껴진다. 생각보다 훨씬 편안하고 나를 잘 품어주는 공간이다.


도서관이 단지 책을 읽는 곳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이곳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눔, 관찰, 사색, 그리고 다시 ‘나’를 세우는 시간들. 도서관은 이제, 나에게 새로운 삶의 무대다.


오늘도 나는 아침을 깨우고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누가 기다리는 것도,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곳에서 나는 하루 중 가장 진지한 시간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한번 나의 하루를 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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