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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버려졌던 장미가 집 베란다에서 꽃을 피웠다

숲길에 버려졌던 장미 한 그루, 8월의 베란다에서 다시 꽃을 피웠다

by 김종섭

6월 초, 숲길을 걷다 깨진 화분 속에 버려진 장미 한 그루를 발견했다. 두 개의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고, 생기를 거의 잃은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였다. 물을 조금 주고 정성을 들인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믿음이 생겨났다.


그날 장미를 집으로 가져와 베란다 한쪽에 조심스레 놓았다. 그 후로 매일같이 물을 주고,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사실 처음부터 꽃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살아만 주었으면 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숲 한쪽에, 흙도 없이 버려진 그 모습이 산책 내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실내에서 키우던 흔적이 뚜렷한 식물이었기에, 더욱 살려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 사연은 지난 6월 브런치 발행 『 다시 피어날, 그 장미나무에게』

시간이 지나면서 장미는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줄기 옆으로 작은 새순이 돋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기존 줄기보다 훨씬 더 왕성하게 자라났다. 며칠 전부터는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중 하나가 조용히 고개를 들고 붉은 꽃잎을 펼쳐 보였다.

▶ 6월 숲에서 데려온 장미가, 두 달 만인 8월. 집 베란다에서 꽃을 피웠다. 손길이 닿은 정성이 모여 다시 피어난 생명은, 그 어느 꽃보다 빛나 보였다.

장미가 피어난 이후, 세상의 모든 꽃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엔 화분 속에서 피는 꽃만이 아름답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이름을 몰라도, 흔한 들꽃이라 해도, 그저 피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오늘 아침, 도서관 가는 길에 공원 펜스 한쪽에서 엉겅퀴 한 송이가 시선을 끌었다. 가시 돋친 줄기 사이로 피어난 보랏빛 꽃이 햇살을 받아 유난히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함께 걷던 아내도 “저 꽃 참 예쁘다”며 발걸음을 멈췄다.

▶도심 공원 펜스 옆, 가시 돋은 줄기 사이에서 피어난 보랏빛 엉겅퀴. 소박하면서도 강인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엉겅퀴'라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막상 그 꽃을 또렷이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길가나 덤불 속에서 조용히 피어 있다가, 어느 날 불쑥 시야에 들어왔다가, 다시 아무 말 없이 여름과 함께 사라지는 그런 들꽃이다. 하지만 오늘의 엉겅퀴는 달랐다. 보랏빛 꽃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걸음을 멈추게 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꽃도 덤불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황새 노는 데 맵새 가지 말라’는 말처럼, 들꽃은 잔디밭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그 흔한 들꽃들조차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흔하다는 이유로 외면받았던 것들, 익숙하다는 이유로 무시되었던 것들. 그런 것들이 새삼스럽게 소중하게 느껴지는 날들이다.


베란다에 핀 장미는 내게 그런 꽃이었다. 6월의 어느 날, 아무도 돌보지 않던 숲에서 버려졌기에, 지금 이 모습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살아나 꽃을 피워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했는지를 알기에, 그 아름다움은 단순한 장미꽃을 넘어선다.


이 장미는 내게 단지 꽃이 아니다. 돌봄의 시간 속에서 피어난 진심이고, 삶의 한 구석을 조용히 위로해 준 작은 기적이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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