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한 아들이 남긴 신발과 변화하는 소비문화 이야기
출가한 아들이 신던 하얀 운동화 한 켤레가 신발장 한쪽에 묵묵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 신발장은 내게 묘한 부담감을 줬다. 신발을 꺼내 빨아야겠다는 생각이 수차례 머리를 스쳤지만, 막상 신발장 문을 열고 손을 대는 것은 늘 쉽지 않았다.
때 묻은 신발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집을 떠나기 전 독립하는 순간들이 그 속에 묻어 있었다. 신발을 만지는 것이 마치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는 일 같아 왠지 모를 묘한 감정과 망설임이 함께했다.
아들이 쓰던 방 옷장 한편에는 값비싼 브랜드의 한정판 신발도 수십 켤레가 박스째 쌓여 있었다. 예전에는 가끔 신발을 물물교환하거나 고가에 팔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런 일도 거의 없다. 내가 아내에게 왜 안 팔고 그냥 놔두느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돈이 급한 게 아니니까 그런가 봐요."라며 웃었다. 아마도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인지, 신발에 대한 집착이나 필요가 줄어든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 미뤄둔 마음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들고, 때와 먼지를 불려 가며 솔질을 시작했다. 신발의 흰 표면 곳곳에 박힌 때를 한 올 한 올 제거하며, 마치 시간을 되돌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실밥이 터질까 봐 조심조심 다루면서 손빨래를 마친 후, 햇볕에 바짝 말렸다.
지난 일요일, 집에 들른 아들에게 깨끗하게 빨아 말린 신발을 건넸다.
아들은 고맙다는 말을 건네왔다. 나중에 집으로 출발할 무렵, 아들은 자신의 신발을 건넸다.
“아빠, 이 신발 신어 보세요. 아빠한테 어울릴 것 같아요.”
많은 신발 중에서도 이렇게 애착을 가지고 신고 다닌 신발에 아들은 특별한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 한쪽이 뭉클해졌다.
캐나다에서는 신던 신발조차도 자연스럽게 중고 거래 시장에 올라간다. 반면, 한국에서는 ‘신던 신발이 근심을 가져온다’는 미신과 위생에 대한 우려 때문에 꺼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신발이 ‘단순히 헌 것’이 아닌 ‘가치를 지닌 물건’으로 인정받는다.
아들이 내게 신발을 건넨 것도 바로 이런 문화적 배경과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행동일 것이다.
최근 조사 결과, 캐나다 성인 중 77%가 지난 1년간 최소 한 번 이상 중고품을 구매했다. 이 중 약 31%는 미국의 관세 위협이 중고품 구매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특히 MZ세대가 이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으며, 책, 음악, 성인 의류와 신발이 인기 품목으로 꼽힌다.
중고 거래 플랫폼 중 가장 선호되는 곳은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이며, 자선 중고 가게와 가라지 세일(차고 세일)도 중고 소비문화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의 ‘당근마켓’과 비슷한 구조지만, 대면 거래가 많아 신뢰를 바탕으로 한 커뮤니티가 형성된 점이 특징이다.
과거 한국에서는 형제자매 옷을 물려 입거나 이웃집에서 헌 옷을 얻어 입는 일이 흔했다. 당시에는 ‘중고’라는 특별한 인식이 없었으며, 단지 경제적 상황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캐나다에서는 중고품을 단순한 절약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다. 실용성과 개성, 친환경 소비까지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밸류빌리지(Value Village)와 같은 중고 상점은 독특한 디자인과 오래된 물건만이 가진 매력을 찾는 소비자들로 늘 붐빈다.
풍요로운 사회에서도 중고품 소비가 늘어난다는 점은 긍정적 의미가 크다. 자원을 아끼고 환경을 보호하며, 물건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성숙한 소비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아들의 운동화를 신는 것은 단순히 신발 한 켤레를 얻는 것을 넘어 세대와 세대가 연결되는 감성적 경험이 되기에 충분했다.
‘헌 것’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을 넘어, 함께 사용하고 나누는 따뜻함이 진정한 가치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