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실내에서, 나는 베란다에서 꽃과 나무를 키우다
열정까지는 아니더라도, 귀찮아하지 않고 그 일을 반복하며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취미라는 나만의 정의를 만들어냈다.
60대가 된 지금, 과거에는 화초를 가꾸는 일이 여성의 전유물처럼 여겨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던 일들이 나의 취미가 되었다.
거실 한쪽에는 아내가 10년 넘게 가꿔온 꽃들이 있다. 시중 가치로 보면 흔하고 값싼 꽃들이지만, 그 속에는 오랜 세월의 손길과 애정이 스며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 평범함이 오히려 더 오래 바라보게 한다.
나는 베란다에 관심을 두고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 화초를 돌보는 시간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꽃을 좋아하게 됐다. 베란다에는 꽃을 피우는 화초도, 꽃을 피우지 않은 나무도 있다. 단풍나무와 호랑가시나무, 캐나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비, 산에서 자생할 법한 풀과 나무들이 작은 숲처럼 어우러져 있다.
캐나다로 이주해 주택에 살던 시절, 뒷정원에 많은 꽃들을 사다 심었던 적이 있다. 그땐 꽃은 그냥 심어 두고 물만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마치 숲 속의 나무처럼 알아서 자란다고 여겼다. 하지만 화단이나 화분 속 화초는 달랐다. 매일 눈길을 주고, 상태를 살피며 물을 주는 일이 필수였다. 그렇게 세심하게 보살필수록 꽃은 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더 아름답게 피어났다.
몇 년 전 늦가을, 대형마트에서 1~2달러에 버려지다시피 팔리던 시든 꽃과 나무를 사 온 것이 시작이었다. 그 후로 버려진 화분 속 꽃들을 가져오기도 했고, 이미 건강하게 자라는 화초들을 사 오기도 했다.
예전에는 ‘자신만 보기 위해 화분에 가둔다’는 생각에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누군가의 보살핌 속에서 더 오래 살 수 있다면, 화분 속 삶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매일 물을 주다 보면 애착이 생긴다. 잎 하나, 꽃 한 송이에도 눈길이 머문다. 물을 주다 보면 “이 꽃에는 조금 덜 준 것 같은데?” 하며 다시 물을 들고 나오는 해프닝도 있다. 모든 화초에게 차별 없이 물을 주려는 내 마음에 나 스스로도 웃음이 난다.
화초를 기르면서 달라진 점도 있다. 숲에서 나뭇가지를 꺾거나 풀을 무심코 밟는 일이 없어졌다. 나무도 풀도 꽃도 모두 생명이고, 그 생명에도 아픔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예전에는 현관 앞 수족관에서 물고기를 키운 적도 있다. 몇 년간 정성껏 돌봤지만, 이유 없이 죽는 일이 반복되면서 결국 수족관을 치웠다. 그때 ‘살아 있는 생명을 기른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가 십 년 넘게 실내에서 화초를 돌본 것처럼, 나도 이제 베란다에서 나만의 화초들을 돌본다. 화려하진 않아도, 그 시간을 통해 하루가 편안해진다.
60대에 이렇게 새로운 취미가 생길 줄은 몰랐다. 그저 매일 물을 주고, 잎새를 들여다보고, 꽃을 쓰다듬는 시간이 이렇게 마음을 편안하게 할 줄은 예전엔 상상도 못 했다. 지금은 꽃에 물을 주며 작은 행복을 만드는 습관이 나의 취미가 됐다.
어쩌면 인생도 꽃 키우기와 비슷한 것 같다. 물을 주고, 햇볕을 보여주고, 가끔은 바람도 쐬어주고… 그저 성급하지 않게 지켜보면 된다. 누군가에겐 시시한 취미일지 몰라도, 나에겐 베란다에서 피어나는 이 조용한 기쁨이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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