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캐나다 어느 집 앞마당에 무궁화꽃이 피었다

누군가의 앞뜰에서 마주한 고향의 꽃, 무궁화

by 김종섭

​며칠 전까지 30도를 웃돌던 무더위가 언제 끝날지 몰랐지만, 요즘 밴쿠버의 날씨는 20도 초반으로 선선해졌다. 해가 짧아져 어둠도 쉽게 찾아오는, 성큼 다가온 가을의 예고편 같다.


​예전에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숲길을 한참 걷다 돌아와도 아직 환했지만, 요즘은 해가 빨리 져 8시만 되어도 동네가 고요하다. 그래서 산책도 자연스레 집 주변 한 바퀴로 마무리하게 된다. 그렇게 천천히 걷던 어느 날, 뜻밖의 풍경을 만났다.


​늘 무심히 지나치던 어느 집 앞마당에 분홍색과 흰색 무궁화꽃이 피어 있었다. 매일 걷던 길인데도 마치 처음 본 듯 신기했다. 사실 밴쿠버의 집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담은 정원으로 가득하다. 예쁜 꽃이 피어 있어도 특별한 감흥 없이 스쳐 지나기 일쑤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 풍경이 달랐다. 볼품없어 보였던 마른 잔디밭을 지나 현관 앞, 두 그루의 무궁화만은 환하게 서 있었다. 낯선 땅에서 만난 고향의 꽃에 반가움이 앞서 조심스레 사진부터 찍었다. 혹시 집주인이 볼까 싶어, 마치 비밀스러운 약속이라도 하는 듯이 몰래 한 장 담았다.


​그 순간, 이전에는 이곳을 수없이 지났지만 무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건 아직 꽃이 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외에서 만난 무궁화는 더 특별했다. 한국에서는 흔히 곁에서 보던 꽃이라 무심했지만, 이곳에서 다시 마주하니 고향을 떠올리게 했다. 낯선 이방의 땅에서 만난 작은 꽃 한 송이가 마음에 파문을 흔들어 놓았다.


문득 생각해 본다. 캐나다에서도 봄이면 벚꽃이 만개한다. 이미 국경을 넘어 대중적인 꽃이 되었지만, 무궁화는 여전히 드물고 그래서 더 귀하다. 마치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오랜 친구처럼, 그 존재만으로도 나를 향해 웃어주는 귀한 '귀인'처럼 다가왔다. 평소 한인 수가 많은 곳이라 길에서 한국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도 별다른 관심 없이 지나치지만, 무궁화는 달랐다.


​이 집의 주인이 한국인일까 하는 생각도 잠시 스쳤다. 하지만 정원의 분위기로 보아 외국인일 가능성이 더 커 보였다. 어쩌면 단순히 ‘좋아하는 꽃’ 일 수도 있겠지. 요즘은 반려동물뿐 아니라 반려식물, 반려나무까지 곁에 두고 살아간다. 생명을 가진 존재가 우리에게 위안과 정서적 힘을 주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외로운 존재인 걸까. 그래서 누군가와의 연결을 갈망하고, 그 마음을 꽃과 나무, 동물에게도 나누는 것은 아닐까. 그 집 앞의 무궁화 두 그루도 주인의 각별한 애정을 받는 반려나무일지 모른다.


​나 또한 직접 가꿀 수는 없지만, 누군가의 앞뜰에 핀 무궁화를 보며 고향을 떠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꽃 한 송이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따뜻해지는 건, 우리가 여전히 관계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낯선 이방인의 삶 속에서 만난 무궁화는, 잠시나마 내 외로움을 덜어주는 '반려'였다.













keyword